오후 5시, 나는 집에서 나와 전기 자전거인 FVL을 타고 삼양동에서 번동으로 이어지는 사거리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신호등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군."
나는 우이천에 가려고 했다. 우이천을 가려면 송천초등학교 앞에 있는 건널목을 지나야 했는데, 마침 신호등의 녹색 점등이 깜빡거렸다. 나는 생각했다. '이럴 때도 있는 거지.'
가만히 땅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드니, 신호등의 녹색 점등이 선명했다. 나는 FVL의 가속 레버를 당겼다. FVL의 모터는 보잉에서 만든 점보 엔진과 설계가 다름이 없다. 정직하면서 묵묵하게 할 일을 한다. 나는 날다람쥐처럼 건널목을 달리는 나와 FVL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나는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이어진 자전거 도로에 진입했다. 그런데 골목길에 숨어 있던 교통경찰이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가로막았다. 그의 짙은 갈색 얼굴과 떨리는 입술이 지금도 기억난다. 사회 초년생 특유의 긴장이 내게까지 전해져 왔다.
"자, 신호 위반입니다."
"예? 뭐라고요?"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신호를 정말 안 지키시는군요."
"신호 위반이라고요? 분명 녹색불에 건넜는데요."
"차량 신호등 말입니다. 빨간불에 주행하시면 안되죠."
"자전거인데요?"
"자전거도 차입니다. 아시겠어요? 이러다가 사고 나면 형사처벌까지 갑니다.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 9월은 이륜차 집중 단속 기간이니까 조심히 타고 다니세요."
이렇게 말하고는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지갑을 놓고 왔다고 했다. 그는 교통경찰만이 찰 수 있는 가슴 벨트에서 검고 뭉툭한 기계를 꺼내더니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는 그 기계에 내가 말한 번호를 입력했는데, 뭐가 잘 안되는지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말하라고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잠시 후, 교통경찰은 해결이 됐는지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 검고 뭉툭한 기계를 내밀며 서명을 요구했다. 나는 서명했다. 기계에서 새하얀 범칙금 용지가 출력됐다. 교통경찰은 출력된 용지를 내게 건넸다.
나는 범칙금 용지를 확인했다. 범칙금 3만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