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2014.03.28 03:27
조회 수 98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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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걸어놓은 새로산 파리채가 햇빛을 받으니 에메랄드 빛깔을 뛰었습니다. 그런 은은한 빛깔을 볼때면 형체모를 감정이 불쑥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지곤 하는 것입니다.

 

몇일전 수목원에 들어갔을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어떤 잃어버린 과거가 생각나는 듯 한데, 실제로 떠올릴 수 있는 건 단편적인 몇몇 이미지들 뿐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창문 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둘어오는 그립고도 신선한 바닷냄새를 막 맡으려는 찰라, 딱 소리가 나며 작은 돌맹이 하나가 내 정강이를 맞고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돌맹이를 주워 들여다보니 연필로 '얼간망둥이'라는 글자가 섬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분명 정근이 녀석의 장난이겠다 싶었지요. '얼간망둥이'라니! 아무리 첨단문명과 동 떨어진 산골이라 해도 어린 아이가 일제강점기때나 쓸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입니다. 나는 겁을 주기 위해서 창가에 있던 파리채를 들고 뛰나갔습니다.

 

"누구냐? 어떤 상놈의 자식이 내게 자갈을 던진 것이냐!"

 

정근이 녀석의 짓이라면, 분명 어딘가에 숨어서 킥킥 거렸을 것인데, 이상하게도 주위는 적막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안개가 두텁게 깔려 있었고 바람 소리마저 훼엥하며 들려오니 왠지 모르게 을씨년스러웠지요.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호신진언을 외우기 시작했지요. 다행히도 얼마 후 경석이 형이 생선 몇마리와 막걸리를 사들고 오셨습니다. 그제서야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형, 왜 이제야 와? 무서웠잖아!"
"무슨 소릴하는 거니? 우린 늘 같이 있었잖아!"

 

또 읍내에서 잔뜩 퍼마신 것인지 경석이 형은 잔뜩 혀가 꼬인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쯤되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것이기에 저는 할 수 없이 작은 아버지 흉내를 냈습니다.

 

"종간나새끼야! 퍼뜩 정신 챙기고 물고기나 노릿하게 구워온나!"

 

그제서야 경석이 형은 부리나케 부엌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벼랑빡에 기대어 TV를 켜보니 추억의 외화인 '왕과 나'가 방영중입니다. 주인공 '율 브린너'의 얼굴이 어딘가 모르게 당백숙과 닮았습니다. 부엌에서부터 생선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들려 옵니다.

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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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심 2014.03.28 03:49
    사진 속의 꽃미남이 참 늠름해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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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성 2014.03.28 11:58

    사진 속의 꽃미남이 얼핏 최수종을 닮은 듯도 하고, 유시민을 닮은 듯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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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형 2014.04.03 23:02
    당백숙님이 저렇게 생기신 분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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