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호 2014.09.27 01:02
조회 수 473 댓글 1

<1>

 

1990년대, 함안에 살던 십대 시절, 괸뽀남은 남 부러울 것이 없었다.


2010년대, 비록 삼십대인 지금은 을지로의 영세한 인쇄소에서 박봉의 월봉으로 영업사원을 뛰고 있다지만,

1990년대 함안에서는 'Yangban Class'라는 비쥬얼 록을 하는 스쿨 밴드에서 베이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직접 작곡했던 '함안이 불타고 있어! (Haman Fire!)''라는 곡은 고교 밖에까지 제법 인기가 있었다.

얼굴이 썩 잘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쇼맨쉽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화장이 잘 받아 그럭저럭 반듯해 보였다.


친구들은 저마다 이렇게 말했다.


"괸뽀남은 함안 바닥에서 썩기엔 아까워."
"괸뽀남이라면 부산이나 동경, 어쩌면 서울에서도 먹힐 수 있을거야!"

"괸뽀남이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정원 딸린 집에서 딸과 개를 동시에 기를 수 있을거야."

 

소녀들도 저마다 이렇게 말했다.

 

"괸뽀남 오빠를 함안에 묶어두기 보단 큰 물로 보내주는 것이 진정한 팬심이야!"

"선배 말이 맞아요! 괸뽀남 오빠는 문화 유산이에요! 우리들만의 소유가 아니라구요!"

"울덜은 오빨 믿어요! 세상를 호령하면서도, 함안의 무구한 소녀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이러한 말들을 들을때마다 괸뽀남의 어깨는 (마치 뭔가가 돋아나려는 것처럼) 으쓱, 으쓱해졌다.

스무살이 되던 2000년, 괸뽀남은 모두의 성원에 힘입어, 드디어 함안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2>

 

bangsan.jpg


그런데 십수년이 지난 오늘날, 괸뽀남은 어째서 장렬한 락스타가 아니라

방산시장 영세 인쇄소의 말단 영업사원이 되어 있을까?

여섯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네에, 넷!" 깍듯이 존댄말까지 하면서.

 

단적으로 말해, 그것은 한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하던 무렵,

구로동에서 우연히 만났던 자경(資敬)이란 이름의 여자 때문이다.

 

괸뽀남의 기구한 사연을 일일히 열거할 수야 없지만

아무쪼록 사내는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어느덧 9월,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지금으로 부터 정확히 16년 전인, 1998년 9월 20일.

괸뽀남은 입곡군립공원 팔각정에 올라 입곡저수지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때 괸뽀남은 왠지 자신의 어깨죽지에 날개가 달린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괸뽀남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 거렸다.

 

"추락하지 않아."

"주색(酒色)만 조심한다면 높게 비상할 수 있을거야!"

Comment '1'
  • profile
    괸뽀남 2014.09.27 07:37

    안채호 이 놈! 가만 안둔다!

    양반 클래스는 화려하게 부활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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