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2022.03.24 04:23
조회 수 6 댓글 0

 

린다는 어디에 있을까? 

주인은 린다를 어디에 감춰둔 걸까?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보니, 몇일 전부터 

주인의 방에서 남겨져 나오는 음식의 양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말똥을 치울 정신도 없었으니 

말들도 똥냄새에 질려 워워- 울어댔다.

 

토요일이면 주인은 어김없이 투물장에 간다.

투물장은 여우와 이리, 뱀과 독수리, 퓨마와 재규어 등 

이 동물 저 동물에게 약을 먹이고 싸움을 붙이는 곳인데 

주인은 들떠서 나가서는 자주 분노에 차서 돌아오곤 했다.

 

돈을 많이 잃은 날에는 분이 안 풀리는지

지하실에서 하인들을 이유없이 채찍질했다.

 

나는 손잡이에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작고 날카로운 나이프를 

조끼 주머니에 숨겨두고는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주인은 매번 돈을 잃을 것이면서도 

나갈때 만큼은 승기에 잔뜩 취하곤 했는데

 

그 날도 크게 흥분하여, 우물지기와 나무지기를 세워두고는

투물장에 새로 들어온 악어의 용맹함에 대해 한 참을 떠들다 나갔다.

그 악어도 이제는 죽은 목숨이다.

주인이 점찍은 동물들은 용맹하다가도 이내 곧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린다는! 린다는.

 

주인이 사는 저택의 꼭대기 층을 향해 원형계단을 오르며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린다를 어딘가에 빼돌려 숨겨둔 것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꼭대기의 주인의 방은 다른층 복도와 분리되어 있고

원형계단 만을 통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식사와 청소와 빨래를 하는 아주머니들은 

한 번에 오르기 힘들어했다. 

 

주인의 방 문 앞에 다다랐다.

문 하단에는 음식물과 빨래들을 나를 수 있는 통로가 있었는데

나는 근래에 불안하여 도저히 음식을 먹지 못했기에

매우 말라있어 그 통로를 통해 겨우 주인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동물들의 가죽과 박제들이 가득했다.

적당히 한 두개만 둔다면야 장식품이겠지만 

각각의 벽마다 가득차있는 동물의 박제들을 보니 흉흉하기 그지 없었다.

천장께어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박쥐를 의식하며

린다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나 침대에도 거실에도 서재에도 어디에도 린다는 없었다.

주인이 밤 중에 어딘가로 몰래 빼돌린 것은 아닐까?

차라리 그렇다면 다행일텐데.

생각하며 뒤돌아나가려는 찰라, 서재 쪽에서 어떤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희미한 멜로디 같기도 하고, 피부에 닿는 열기 같기도 하였으며

분명히 나를 끌어들이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미묘한 기운을 따라 서재의 한모서리로 다다르니

세로로 길쭉한 아치형 창의 양 옆으로 

흉악하게 생긴 선인장이 놓여있었고

그 앞으로 치타의 가죽이 깔려 있었다.

왜 여기 가죽이 깔려있지?  

가죽을 들어보니 과연, 네모난 나무 뚜껑이 보이고

그것을 열어보니,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보였다.

 

어두운 구멍 속으로 계단을 하나 하나 밟아 내려가자 곧 지면에 닿았다.

계단이 난 구멍 말고는 빛이 없었고 너무나 어두웠다.

그러나 그 어둠은 단지 빛이 없기 때문이 아닌 

짙고 무거운 불길함으로 더 어두웠다.

 

창이 없는 그곳은 

지하가 아님에도 더욱 지하 같았고

쾌리하면서도 고약한 냄새가 났고

공기는 사나와서 목과 피부를 따끔거리게 했다.

 

그러나 그곳에 린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린다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결은 없었다.

린다는 죽은 것이다.

 

나는 그대로 도망쳐 나와 

뒷 산을 넘어 아무도 모르는 바닷가 마을로 도망치고 싶었다.

린다가 어떻게 죽어있는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보고 알아내야만, 

린다의 영혼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괴로워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나는 계단을 올라 서재에서 등불을 가져왔다. 

린다를 보았다.

 

그리고 그 밀실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이 되어 

몇시간이나 울부짖었다.

 

그곳에는 몇구의 시신이 더 있었는데 모두가 여자였고 전부 박제되어 있었다. 

그 하얗고 아름답던 린다의 피부는 자글자글 금이 가 있었는데 

바니시 같은 것을 발랐는지 등불에 번득거렸다.

린다를 영원히 물질계 안에 가둬두려는 속셈이었을까!

린다의 성기 부위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빛이 차단된 이 곳에서 주인은 대체 무슨 악행들을 저지른 것인가! 

 

린다의 허공을 보는 눈동자 만은 살아있는 것 같아

린다의 영과 혼과 한이 박제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린다와 여인들을 모두 윗층으로 올렸다.

거기엔 율리아도 있었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율리아는 일곱살의 모습 그대로 

마치 빙하에 갇힌 것 처럼, 얉은 투명막 속에 들어 있었다.

호수에 빠져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주인은 하늘이 두렵지 않은걸까.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울고 또 울었다.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이 다가왔다.

나는 박제된 여인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게시판 설명 관리자 2013.09.25 2012
70 그림자맨 <기적 수업> 공부 노트 #1 그림자맨 2023.06.13 50
» 샤먼의 지하실 근세의 린다2 동시성 2022.03.24 6
68 샤먼의 지하실 근세의 린다1 동시성 2023.01.24 3
67 그림자맨 <인지학> 공부 노트 #1 그림자맨 2022.06.01 94
66 그림자맨 2021.10월 운동 일지 5 file 그림자맨 2021.10.21 460
65 그림자맨 일기 [9] 그림자맨 2021.01.20 205
64 그림자맨 일기 [8] 3 그림자맨 2020.11.11 424
63 그림자맨 일기 [7] 1 그림자맨 2020.10.27 292
62 그림자맨 일기 [6] 1 그림자맨 2020.09.08 262
61 그림자맨 일기 [5] 그림자맨 2020.08.26 184
60 그림자맨 일기 [4] 그림자맨 2020.06.03 172
59 그림자맨 일기 [3] 2 그림자맨 2020.05.19 21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