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오스 까락스의 '나쁜피' (숨겨진 반전)

by 동시성 posted Feb 15, 2013

 

*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숨겨진 반전이 있는 영화인 만큼 리뷰보다 영화를 먼저 보시길 권장합니다.
* 2016년 4월, 리뷰를 일부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퍼가시는 분은 출처(Avesta Art)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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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피>의 포스터 / 레오스 까락스 감독의 비교적 최근 모습
 
 
<서문 - 운명적인 사랑>
 
모든 시대, 모든 나라마다 각양각색의 러브 스토리가 존재해 왔는데, 그중에는 흔히 '운명적'이라고 불려지는 좀 더 특별한 러브 스토리가 있어왔다. 문화권에 따라 '연(緣)'이나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소울 메이트(Soulmate)'라고 불려지기도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자신의 영혼의 반쪽인 것처럼 여기며 '님'이라고 칭해지기도 했던 그런 '운명적'인 사랑말이다.
 
그런 연인은 서로를 처음 만나면, 대게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며, 상대의 존재는 어느새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되어버릴 정도로 거대한 것으로 변해 있으며, 보통 그런 상대는 일생에 단 한 명 뿐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는 오래전부터 예술 작품에서 많이 다루어져 왔는데, 지금 생각나는 것을 꼽아 보자면, 소설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 막스 밀러의 <독일인의 사랑>, 그리고 몇 해 전 큰 히트를 기록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정도가 있겠고, 영화로는 (소설이 원작이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 그리고 지금 리뷰하려는 레오스 까락스의 <나쁜피>가 있겠다.
 
이런 종류의 러브 스토리는 크게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세상에는 사랑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플라토닉 러브를 믿는 사람도 있지만, 사랑은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한다, 사랑은 성욕이자 종족 본능일 뿐이다, 특정 뇌물질의 분비다, 과격하게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라고 까지 생각하며 사랑이라는 것 자체를 불신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영혼을 각성할 수 있는 도(道)의 길이 있다며 '사랑의 도(道)'라 칭해졌는데, 고대부터 전해지는 신비주의 전승인 카발라(Kabbalah)에서는 '달전승(파올로 코엘료의 <브리다> 참조)'이란 비의(秘儀)와도 관련되며,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외경인 '도마복음'에도 '사랑의 도(道)'와 관련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서 사람이 굳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태어나는 건, 단지 자식을 낳기 위한 생식본능 때문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구원이나 깨달음과 관련된 어떤 비밀의 열쇠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과연 '소울 메이트'라고 부를 만한 '운명적인 사랑'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사람의 근육 반응을 통해 몸에 좋고 나쁜 물질을 판별하게 한 조지 굿하트 박사의 ‘응용 운동역학’과 이를 감정과 지적 자극에도 반응하도록 적용한 존 다이아몬드 박사의 ‘행동 운동역학’을 의식 연구에 도입하여 세상의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도록 '근육 테스트'라는 편리한 방법(도구)을 고안해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세미나에서 한 남자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에게는 이번 생애에 꼭 만나야만할 연인이 있습니까?”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즉석에서 근육 테스트를 통해 답을 찾아냈다.
 
“질문자에게는 있습니다.”
 
그리곤 과거 생애, 서로가 영혼의 차원에서 강렬한 맹세를 하면 그 약속이 다음 생에도 지속되어, 꼭 만나야 하는 인연으로서의 카르마(Karma,業)를 빚게 된다는 요지의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니 “운명적인 사랑은 실제로 있는 것일까?” 의 답변은 “여러 생애를 살아온 각자의 카르마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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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9>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나쁜피>
 
1980년대 뤽 베송 등과 함께 새로운 누벨 바그, ‘누벨 이마쥬’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던 레오스 까락스 감독의 초기작인 <나쁜피>는 실로 많은 오해에 둘러 쌓여있다. 뛰어난 미장센과 감각적인 대사, 자극적인 질주씬과 강렬한 엔딩 등에 가려졌기 때문일까?
 
<나쁜피>의 줄거리는 "알렉스(드니 라방)가 리즈(줄리 델피)와 사귀다가 인생을 변화를 위해 리즈를 차버리고는, 새 일터에서 만난 안나(줄리엣 비노쉬)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안나는 늙은 마크(미셸 피콜리)를 사랑하고, 이어 벌어지는 상황 역시 운이 나쁘게 흘러버려, 알렉스는 사랑을 이루는 대신 사망을 하고 만다.’’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 외 거의 모든 평론가들도 대게 비슷하게 알고 있는 듯한데, 이는 영화에 ‘숨겨져 있는 중요한 장면’을 발견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버린 오해이다. 하지만 사실 ‘오해’라고 말하면 어폐가 있는 것이, 감독은 오히려 그 ‘숨겨진 장면’에 격정적인 음악까지 깔며, 알아보려 한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도록 강조하였다. 그러니까 사실은 '비밀'도, 일부러 ‘숨긴’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그 ‘중요한 장면’은 영화를 완전히 ‘반전’시키는 장면으로서 알아차리는 것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따라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가 완전히 달리지는데, 예를 들면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식스 센스’에서 주인공 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었다는 사실을 끝내 모르고 넘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들, 그리고 평론가들조차 그 ‘중요한 반전의 장면’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감독이 그 ‘중요한 장면’을 알아보려 한다면 알아보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로, 알아보지 못하려고 한다면 알아보지 못하도록 적당한 배합으로 교묘하게 연출했기 때문이다.
 
<나쁜피>의 반전은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반전영화’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데, 재미있는 것은 그 ‘중요한 반전’은 알아차리는 것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에 따라, 관객이 영화를 봤을때의 정신 상태나 마음의 상태, 혹은 최소한 집중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도에서 나쁜피의 반전은 식스 센스의 반전처럼 일일이 설명해주는 친절한 방식을 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이것은 극중에서 어떤 진실(여자)을 놓쳐버렸던 주인공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이 진실(여자)을 함께 놓쳐버림으로서, 모순되게도 영화가 더 리얼해지고 실재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안(영화 속 알렉스)과 밖(관객)의 상황이 닮은꼴로 겹쳐짐으로서 더욱 뚜렷한 의미(우리는 얼마나 진실을 놓치고 사는가!)가 생성되는 실험적이고 입체적이며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오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끝내 이 영화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 영화는 느낌 있지만 다소 난해하고 모호한 청춘 영화로 알려져버렸다. 하지만 비밀을 알고 본다면 사실 <나쁜피>는 모호하기는 커녕 뚜렷한 골자와 교훈을 지닌 영화인 것이다.
 
 

명장면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와 함께 질주하는 알렉스
 
 
<너를 그냥 스쳐간다면 나는 모든 걸 스쳐가는 거야>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인터뷰에서 레오스 까락스는, 나쁜피는 영감과 함께 떠오른 하나의 문장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 문장은 영화의 중반부쯤에서 알렉스가 안나에게 하는 대사이기도 하다.
 
"너를 그냥 스쳐간다면 나는 모든 걸 스쳐가는 거야."
 
감독의 말대로 바로 이 대사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 밖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대사가 더 있는데, 알렉스가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를 배경으로 컬러풀한 거리를 질주하고는 돌아와 안나에게 하는 대사다.
 
"순간의 사랑을 믿어요? 순간적으로 찾아와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을!”
 
영화 막바지에 복부에 총알을 맞고는 달리는 자동차에서 반쯤 넋이 나간 채 지껄이는 알레스의 독백 또한 중요하다.
 
"나는 연습장의 낙서처럼 되는대로 살았어. 바다 한 가운데서 부서져 해변이나 바위에 닿지 못하는 파도처럼"
 
위의 세 대사는 이 영화를 설명해주는 일종의 키워드가 되어준다. 즉, 알렉스는 순간적으로 찾아와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을 만났는데, 바다 한 가운데 부서져 해변이나 바위에 닿지 못하는 파도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닿지 못하고 그냥 스쳐감으로서 인생의 모든 걸 스쳐가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내용이다.
 
그런데 알렉스는 왜 사랑하는 사람과 닿지 못하고 그냥 스쳐갔다는 걸까? 영화를 보면 분명 안나와 대화도 많이 하고, 낙하산도 함께 타며, 혜성이 지나가 지표면이 뜨거워져 곤란해 하는 안나를 안아들고 건너편 숙소까지 데려다주기도 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안나는 알렉스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나는 (본의는 아니겠지만) 알렉스의 진짜 연인의 모조품이자 알렉스를 죽음으로 빨아들이는 일종의 미끼의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면 알렉스가 사랑하는 여자는 오토바이를 타고서 끝까지 알렉스를 쫓아오는 리즈인가? 물론 아니다. 리즈는 스치기는 커녕 알렉스가 스스로 끊어낸 여자다. 그렇다면 알렉스가 정말 사랑하고 또 그냥 스쳐버리게 된 여자는 누구일까? 이제 나쁜피의 자세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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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피>의 줄리엣 비노쉬 / STBO 백신
 
 
<진짜 줄거리>
 
시대는 미래이고 배경은 파리이다. 혜성의 접근으로 유례없는 기상이변이 일어나 사람들은 지독한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STBO라는 불치병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 병은 사랑이 없는 사이가 성관계를 갖을때 걸리는 병이다. (이 설정에서부터 사랑이 있고 없음의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무분별한 성관계를 비판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영화속에선 젊은이들의 49%가 이 병에 걸려 있으며 치사량이 51%를 넘는다.)
 
알렉스는 삶의 변화를 꿈꾼다. 그런 알렉스에게 아버지의 친구였던 마크 일당이 찾아와 아버지(지하철에서 살해 당한)의 부고를 전하고는 아버지 대신 범죄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 범죄의 내용은 STBO의 백신을 흠쳐내어 다른 곳에 비싸게 팔아버리자는 것이다.
 
알렉스는 거절하지만, 몇일 후 도심의 일터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 여인을 목격하고는 감전되어 버리듯 첫눈에 강렬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순간에 완성되어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이다. 강렬한 BGM이 깔린다. 그 경험이 촉발이 되어 알렉스는 변화에의 열망을 실행에 옮기게 되고, 사귀고 있던 리즈에게 작별 편지를 써놓고는 여인을 목격한 곳이자 마크 일당의 거점이 있는 파리의 도심으로 떠나 버린다.
 
밤거리에서 또 다시 마주치게 되는 운명의 여인. 또 다시 강렬한 BGM이 깔린다. 알렉스는 여인을 뒤쫓지만 여인은 처음보는 알렉스를 경계하며 발걸음을 빨리 하고 알렉스는 여인을 놓쳐 버린다. 여인을 놓쳐버린 근방에 마침 마크 일당의 거점이 있고 알렉스는 그곳을 찾는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바로 거기에 자신이 쫓았던 운명의 여인과 얼굴이 매우 흡사한 안나를 만나게 된다. (줄리엣 비노쉬의 1인 2역이다.)
 
운명의 여인과 늙은 마크의 젊은 애인 안나는 닮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사뭇 다르며 옷차림도 다르다. 하지만 알렉스는 안나가 방금 막 옷을 갈아입었다는 정보를 듣고 별다른 의심도 없이 운명의 여인과 안나가 동일인일 거라고 단정 지어버린다. 이 간단한 착각에서부터 알렉스의 그릇된 투영이 시작되는 것이다.

알렉스는 딱히 돈을 벌고 싶은 욕망도 없다. 느낌없이 헛도는 인생을 벗어나 가슴이 뛰는, 이른바 속도의 쾌감이 느껴지는 '라이브'한 진짜 인생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범죄에 가담할 의향이 딱히 없었음에도 운명의 여인으로 잘못 투영된 안나를 위해 목숨을 걸게 된다. 즉, 마크 일당의 적인 미국 여자 일당의 포섭이나 협박을 무시하고, 예정대로 STBO 백신을 흠쳐 마크 일당에게 가져다줌으로서 미국 여자 일당의 총에 맞게 되는 것이다.

 

STBO 바이러스를 외국에 팔아넘기기 위해 마크 일당과 함께 공황을 향해 달리는 자동차에서 알렉스에게 뜻밖의 잔인한 진실이 공개된다. 알렉스가 진짜 사랑하는 여인이 알렉스가 타고 있는 자동차를 스쳐 지나는 것이다. 그것도 알렉스가 총에 맞을 죽어가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게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흠치면서! 그때 영화에서는 알렉스가 그녀를 볼 때마다 깔리는 강렬한 BGM이 다시 한 번 깔리고, 알렉스는 놀란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는 안나를 바라본다. “이 여자가 아니었구나!” 자각하는 장면이다.

 

알렉스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그 이름 모를 운명의 여인(왜인지 이름이 '미셸'일 것 같다)은, 그 존재를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등장할 때 마다 같은 음악이 깔리는 것 외에도 (처음 버스에서, 두번째 밤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늘 같은 옷인 세일러복 스타일의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다. DVD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돌려서 확인해 보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자동차에서 스칠 때의 장면은 빨리 지나가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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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버스에서 목격했을 때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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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밤거리에서 목격하고 뒤쫓을 때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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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달리는 자동차 밖으로 스쳐 지나갈 때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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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지나는 여인를 보고, 옆자리의 안나를 본 뒤, 충격을 받는 알렉스
 
 
자동차 밖으로 여인을 스쳐 보내고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진 알렉스의 충격 받은 표정을 통해 관객들은 순간적으로나마 심상치 않은 뭔가가 지나갔음을 충분히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마크 일당을 추격하는 미국 여자 일당, 알렉스를 오토바이로 추격하는 리즈, 알렉스가 총에 맞은 것을 확인하고 놀라는 안나와 마크 일당, 총격전 끝에 미국 여자 일당을 격침하는 마크 일당 등, 굶직하고 강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인해, 많은 관객들이 앞서 스쳤던 어떤 장면, 무슨 의미가 있는 듯한, 심상치않아 보였던 그 무엇을, 인지하고 파악해내지 못하고 그 인상이 기억속으로 덮여버리는 것이다. 즉, 망각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죽어가는 알렉스는 자학과도 같은 독백을 늘여 놓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도 정확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죽어가는 자의 독백이다. 공황에 도착해 자동차 본네트에 기대어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온 리즈를 향해서도 낭만적인 듯한 말들을 늘어놓지만, 이 역시 큰 의미가 있는 말이 될 수 없다. 리즈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가 버린다. (그럼에도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길을 어루만지고 작은 계단 하나에도 감사하겠다"는 알렉스의 독백은 감동적이다.)
 
그렇게 알렉스가 숨지자 안나는 갑자기 활주로를 미친듯이 질주를 시작한다. 인상 깊은 마지막 장면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안나가 뒤늦게 알렉스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거나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강렬하게 부셔져버린 사람의 최후를 목격함으로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한 인간의 생애와 카르마, 한(恨) 같은 것에 대한 어떤 포괄적인 느낌에 휩싸여 나타나는 즉흥적이고 트랜스적인 반응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나쁜피의 줄거리이다.
 
 
<우리는 얼마나 진실을 놓치고 사는가!>
 
나쁜피는 한 번도 닿지 못하고 스쳐가는 안타까운 연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런 사랑을 스쳐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스치는 것과 같기에 주인공은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사랑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잃어버리고, 다른 대상에 투영하여 온갖 에너지를 실컷 쏟고 산 다음, 한참 나중에서야 자신의 길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중에라도 인정하게 되면 다행일 수 있는데, 더러는 오랜 세월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두려운 나머지, 진실에 영영 등을 돌린 채로 끝까지 우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을 잘 표현한 영화로는 임필성 감독의 '남극 일기'가 있다.)
 
전승(傳承)이나 임사체험자 등을 통해 알려진, 죽는 순간이면 찾아온다는 ‘주마등’ 이라는 것이 있다. 어쩌면 그 ‘주마등’이 스치는 순간에야 알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며, 내가 무엇을 망각해 버렸으며, 무언가를 망각해버렸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한채, 한 평생 사바세계(娑婆世界)의 헛바퀴를 돌고 있었다는 것을.
 
이 영화의 메세지가 바로 이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스쳐 보내고, 망각할 수 있다는 것이며, 속은 채로 거짓 대상에 진실을 투영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나쁜피>를 보면서도 울고 있는 '하얀 세일러복의 여인'을 놓쳐버린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을 놓치고 살아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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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의 한 장면 / <블랙스완>의 흑조
 
 
<교란과 속임수>
 
이 영화가 주는 또 하나의 힌트는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는 '교란'이나 '속임수'같은 방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경우처럼 특별히 만나야할 연인이 있다거나 꼭 걸어야 하는 길이 있을 경우일 때, (각자의 카르마에 따라) 그것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동화나 고전 중에는 인생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더러 있어, 이러한 상황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인어 공주’에서 왕자가 자신을 구한 것이 ‘인어 공주’가 아니라 ‘이웃나라 공주’라고 속이는 상황을 보라. 또 ‘백조의 호수'에서는 '흑조'가 나타나 '진짜'와 '가짜'를 뒤집어 버린다.
 
이러한 '교란'과 '속임수'에 당하면 영화 속의 알렉스 처럼 거짓 대상에 진실을 투영시켜 버릴 수 있는데, 그럴수록 자연스레 진실과는 멀어지게 된다. 영화의 뒷부분, 알렉스가 자동차에서 운명적인 여인을 스쳐 지나던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자.
 
순간적이고 짧기는 하지만, 초반부터 반복되던 강렬한 음악을 반복해 깔며 주인공이 크게 놀라는 표정까지 짓게한 그 장면은, 당연히 감독이 아무 의미 없이 집어 넣었을리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강렬한 사건들로 인해 관객들은 그 뭔가 중요해 보였던 이전 장면의 의미를 채 알아차리기도 전에 망각해 버릴 수 있는 것인데, 더 무서운 것은 영화 속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던 알렉스 본인조차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망각해 버린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알렉스는 자동차 밖으로 스쳐 지나는 여인을 목격하고는 자신이 찾던 여인이 안나가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었다가도, 머리가 이미 교란되고 잘못된 투영을 겪어버려 온전치 못한 터에 출혈까지 있어 혼미해지니, 직전에 알아챈 충격적인 진실을 채 소화해내지 못하고 이상하리만큼 쉽게 지워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머리 속에서 어떤 테옆 장치가 스르륵 돌아가는 것처럼.
 
이런 증상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서 반복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데,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거나 어떤 연유로 망각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계속해서 자기 인생에 그 잃어버린 것과 관련된 메세지가 끊임없이 펼쳐진다고 해도, 이상하리 만큼 그 영역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의식이 끊기는 것처럼 못보고 넘어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고통스러우니 떠올리지 말 것 - 폴더'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는데, '고통스러우니 떠올리지 말 것 - 폴더'란, 앞서 서문에서 잠깐 언급했던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이름 붙인 심리학적인 개념으로서, 인간이 너무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이나 고통을 접하게 될 경우, 머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기억을 망각하고 그 기억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폴더 안에 숨겨넣고 '고통스러우니 떠올리지 말 것'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의식의 속성을 말한다.
 
이렇듯, 인생은 망각과 잘못된 투영과 애꿎은 투사들로 빗나갈 수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위험을 알고 정신의 자각을 놓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이 걸어야할 행로에서 비켜나가 있을까? 영화는 비록 비극으로 끝나지만 감독이 관객에게 던져주고자 했던 교훈과 메세지는 뚜력한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이나 사명 같은 것은 때로는 고통에 얼룩져, 어떤 교란과 속임수, 방해공작에 가려지고, 어지러운 세상에 뒤섞여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기에 눈을 씻고 정신을 바로 잡고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붓다'가 말했듯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며 굉장한 기회이다. 이 어마어마한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옛 가요의 가사처럼 최후의 순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알렉스처럼 '사랑의 도(道)'를 걸어야 하는 운명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 그대여!

 

- 무한궤도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때' 中 -

 

Comment '2'
  • 12 2015.08.13 10:56
    좋은 리뷰.
  • dmsgktn 2019.04.11 15:09
    영화를 보며 혼란스러웠던 부분을 선명하게 설명해주어서 감사드립니다. 세번 등장했던 흰원피스의 안나가 어떤 존재인지 계속 신경쓰였거든요. 다만 그 안나가 이 안나라고 저도 알렉스처럼 착각했답니다. 멋진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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