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2023.01.24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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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먼의 지하실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것을 보았지만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고 또 슬펐던 것은 

근세시대 때의 린다와의 만남이었다.

 

린다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고, 물론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린다는 저택에서 일을 하는 시녀였고, 나는 말을 관리하는 마부였다.

 

린다의 목덜미는 하얗고 눈동자는 영롱했다.

아주머니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불을 삶고 있을때도

린다가 있는 주변에는 언제나 맑은 빛이 감돌았다.

 

내게 린다는 성녀처럼 보였고, 린다가 있는 곳은 어디든 성전이었다.

린다의 눈 앞에 있을 땐, 공기의 결이 맑고 부드러워 졌으며

순간은 깊고 시간은 여유로워졌다.

 

린다는 영성이 깊었다.

우리는 밀실에서 우리만의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사람들을 오해하고 다투게 하는 마귀의 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린다는 영민하고 목소리도 매우 아름다웠다.

나는 그런 린다를 위해 밤마다 틈틈히 시와 노래를 만들었다.

 

"눈으로 보는 비좁은 이 세상은"

"껍질 뿐인 삶은 얼마나 허약한가"

"형상을 초월하는 진실을 보게 하시여" 

"이곳에서도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

 

우리는 계급을 초월하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나눴다.

정원의 비밀공간에서 내가 만든 노래를 린다가 부를 때면

영혼이 보름달처럼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날 린다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주인에게 발각되었다.

곧 그 노래를 만든 사람이 나라는 것이 밝혀졌다.

 

주인은 그때부터 나와 린다가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저택의 주인은 린다를 욕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저택의 출입 금지 당하고

마굿간과 마굿간에 딸린 집에서만 있어야 했다.

나를 딱하게 보는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이것 저것 갖다주면서

린다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하루는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는데

저택의 주인이 밤마다 린다를 방으로 블러들인다는 것이다.

호밀빵 위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이따금 린다가 발코니에서 천을 널고 있는 모습을

멀리 아래에서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저택의 주인은 린다를 가둬두기 시작했고

더이상 그나마의 린다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새벽이 되면 린다가 갇혀있는 방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창문 틈새로 바람을 통해 멜로디가 전해지길 바라며

음성으로 전해지지 않더라도 어떤 어네지로서 닿기를 바라며

우리가 함께 만들고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린다는 답이 없었다.

가득한 슬픔이 반복되자

서서히 마귀가 찾아왔다 

마귀는 나에게 말했다. 

 

“린다가 응답하지 않는 이유는 널 잊었기 때문이야.”

“고귀한 주인이 린다를 품었으니, 말똥 냄새 나는 천한 너는 지워졌어.” 

 

나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럴리 없어. 우리의 반짝거리던 그 영롱한 순간들을 린다는 차마 잊을 수 없을거야!” 

 

이후에도 린다는 소식이 없었다.

발코니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들 조차 목격하지 못하였다. 

린다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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