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에 얹혀 살던 친구가 말없이 나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검정 고무줄이 가득찬 박스를 예닐곱개나 두고 갔습니다.
부업이라도 했던 걸까? 왜 이렇게 고무줄이 많은 거지?
이 많은 고무줄로 대체 뭘 해야 할까요?
버리긴 아깝지만 그렇다고 역전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일일히 나눠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팔려고 해도 택배비가 더 많이 들 거 같기도 하고요.
고무줄을 이용해 미술 작업을 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고무줄이 딱히 긴 것도 아니고 길이가 애매하게 50cm 정도라
마땅히 뭘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곰탕을 끓이는 냄비에다 냅다 처넣고
여러차례에 걸쳐 가차없이 몽땅 녹여 버린 다음에
준비해둔 주형틀에다 정성스럽게 부어서
고무 조형 작품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도 생각해 봤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는 것이
주형틀을 만들기가 보다 어렵고 값이 나갈 뿐 아니라
애꿎은 곰탕 냄비만 태워 먹어버리겠지요.
마침 집에 남는 요커버가 있긴 한데
고무줄을 채워 넣으면 푹식푹신 쓸만하려나 생각해 밨지만
아무래도 환경 호르몬이 나올 것 같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며 마치 미친년이 머리 끄댕이를 잡아 뜯듯
방안을 온통 고무줄로 산발을 해 놓았는데 퍽 을씨년스럽대요.
현관벨이 울렸습니다.
친구가 돌아온 것 같네요.
저는 재빠르게 창문을 열어습니다.
"어디 갔다와?"
"응, 성근이랑 속초에 갔다 왔어!"
"배고프지?"
저는 모른 척 콧노래를 부르며 우동을 삶았습니다.
"아아악! 이게 다 뭐야!"
"응? 왜왜?"
"누가 고무줄을 다 이렇게 해쳐놓은거야?"
저는 용의 주도하게 창문을 가르켰습니다.
"창문이 열려있네! 도둑 고양이가 왔다갔나 봐!"
"개수작 부리지 마! 창문에 모기장 달린거 안보여?"
"내가 볼때 도둑 고양이는 바로 네 년 같은데!"
달리 할 말이 없고 해서 잽싸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묵비권에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문열어! 미친년아! 당장 문열어!"
부엌에서는 우동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
용맹한 말갈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