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2년여를 일했던 종로5가의 7 편의점을 퇴직하였다.
눈을 감으면 이X석 점장님의 미소가 아련한 멜로디처럼 흐른다.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생이었기에 점장님과는 일주일에 한 번, 근무 교대를 할 때 마주쳤었다.
나는 교대할 때마다 항상 점장님에게 가불을 요구했다.
일주일에 한 번, 10만 원, 15만 원, 7만 원, 나의 지갑 사정에 따라 가불금액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받은 돈으로 나는 일주일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돈을 쓸 때마다 점장님의 미소 어린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양파 한 묽음을 살 때도, 지갑 속 만원의 현찰을 만질 때도, 순댓국 한 그릇을 먹을 때도. (이건 점장님이 사주신 거야. 맛있게 먹자.)
그렇게 2년여 동안을 아무런 불평 없이 가불을 해주신 고마운 이X석 점장님을 추억한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종로5가 7 편의점의 매출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현저히 나락으로 추락했다. 점장님은 아무렇지 않은 체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점장님의 내면, 매출 감소로 인한 근심을 나는 알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7 편의점 옆에 중급 호텔이 있어, 외국인 손님이 많았다. 또한 7 편의점 근처에 위치한 광장시장은 한국의 주요 관광코스이기에 편의점 매출 향상의 큰 도움이 되었다. 그야말로 황금시대였다. 나는 편의점에서 근무하며 여러 나라의 인종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흑인, 미국인, 이탈리안, 차이나, 모슬렘, 재퍼니즈
한가한 시간에 편의점에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멕시칸 남성이 “Tropic of Cancer”라고 아는 척을 한 적이 있었다. 겉표지의 영어 제목을 읽어낸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어떤 금발의 아메리칸 미인 여성이 내가 잠시 펼쳐 두었던 마크 트웨인의 “아서 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의 북 커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선 내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Oh, Mark Twain"
종로5가의 7 편의점은 내게 세계와 같았다.
아름다운 추억.
하지만 달콤한 꿈은 영원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로 점장님은 편의점을 본사 직영으로 넘겼고, 나는 결국 일자리를 잃었다.
절망은 내게 사치다.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