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랜만에 조카 두 명이 놀러왔다.
어제는 다들 알다시피 제 20회 바다의 날이다.
강원도 산골에서 어렵게 고구마 농사를 지내는 관계로
조카들은 아직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단다.
둘 중 남자인 작은 놈은 나한테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삼촌, 바닷물은 정말 짜? 정말 파래?"
안쓰런 마음에 회라도 사주자 마음 먹고
도회지로 나왔지만, 정작 여름 날씨라
회가 신선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장 비브리오 균이라도 옳겼다가는
누나에게 한 소리 들을게 틀림없어
메뉴를 육회 사시미로 변경하였다.
"삼촌, 나 회 처음 먹어봐!"
"바다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걸 만날 먹는다니 부러워!"
나는 여러말 하기가 귀찮아서,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회 사시미와 새로나온 유자 소주를 마시고는
바다는 못 보여줘도 강은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인근에 있는 광나루 한강 공원으로 나왔다.
조카들은 비둘기떼를 보며 소리 질렀다.
"갈매기다! 갈매기!"
과연, 강원도 산골에는 비둘기떼 조차 없는 것이다.
비둘기를 갈매기 삼아 새우깡이나 몇 다발 던져 주고는
인근에 있는 유적지인 몽촌 토성을 보여주려
근처 88 올림픽 공원으로 이동하였으나
몽촌 토성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조카들 중 여자인 큰 놈이 말했다.
"올림픽에는 수십일 동안 꺼지지 않는 성화라는 불이 있대!"
작은 놈이 말했다.
"말도 안돼! 어떻게 불이 수십일 동안 안 꺼지냐?"
나는 조카들에게 말했다.
"이란 야즈드에 있는 불의 사원이란 곳에는"
"무려 1500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불이 있단다."
그러자 조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못 들은척 하더니
갑자기 정수라의 '난 너에게'를 부르기 시작했다.
과연, 그 노래는 강원도 산골로 시집간 누나의 십팔번이었다.
"남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
그들은 '난 네'라는 가사를 '남매'라는 가사로 오인하고 있는 듯 했다.
우애가 좋은 남매였다.
나는 조카들의 '남매'에 대한 찬탄가를 들으며
강원도 산골에서 고구마를 재배하며, 나름의 도를 닦고 있는 누나 내외와
이슬람의 광풍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조로아스터의 불꽃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