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춘mi와 처음 만날 날은 저번 주 일요일 밤이었다.
그녀는 키가 175cm는 돼 보였는데, 하반신에 달라붙는 짙은 블루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녀의 가죽구두 굽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돌고 있다. 또각, 또각, 또각, 그녀는 흘러내린 갈색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서 도마뱀처럼 냉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메이트님! 막걸리 누가 창고에 진열하셨어요?”
“저는 아닙니다.”
“메이트님! 혹여나 고객님이 상온에 둔 막걸리를 드셔서 탈이 난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기습공격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막걸리를 걸고 넘어갈 줄이야.
흔치 않지만 이러한 기습적 공격이 발생하면 내 입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작정(의식, 또는 무의식에 나도 모르게 저장된 어떤 것.) 지껄여댄다.
“하. 참나, 하루 이틀 장사해보셨어요? 막걸리 하루 이틀 지난다고 상하지 않습니다. 가만두고 보니까 너무 고지식하시네요.”
나는 오늘 밤 K춘mi에게 이 말을 한 것에 대해 내심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막걸리 네 병을 서울우유 1리터 팩 앞에 진열했다.
“메이트님. 여기는 바람이 불어오니까 앞으로는 여기다 진열하세요.”
“바람이라고 다 똑같은 바람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요.”
그녀는 황량한 들판의 낫을 든 사신처럼 내 곁을 지나갔다. 나는 그녀에게서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정렬되어있는 김밥을 다시금 정리하더니 갑자기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메이트님! 혹시 투잡하세요?”
나는 곤혹스러웠지만 대답했다.
“아뇨.”
“그럼 공부하세요?”
“아니요. 근데 왜 묻죠?”
“이곳에 투잡하신다는 분들이 많아서 한 번 여쭤봤어요.”
“저는 이것저것 합니다.”
나는 씁쓸한 뒷맛을 느끼며 편의점을 나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맥주를 마시며 K춘mi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내 머릿속을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