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강감찬이다. 올해 유치원에 입합하였다.
부모성 함께 쓰기를 해서, 김강 감찬이 아니라,
아버지 강감찬을 좋아해서, 김 강감찬이다.
아버지께서는 김씨인 만큼,
김유신이나 김좌진을 좋아했으면 됐을 것을
하필 강감찬을 좋아해서, 김강감찬이 되었는데
덕분에 코흘리개인 유치원 학우들은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심지어는 유치원 선생님들이라고 하는 작자들 조차
'긴강강찬' 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름을 영어 이니셜로 쓸때도, KKKS 라고 써야하는데
아메리카의 백인우월집단을 연상케 하여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내가 올해 입학한 낙성대의 유치원은 5세반이다.
하지만 나는 빠른 14이기 때문에 4세이다.
만으로는 3세이니 어리다면 어린 편이다.
주위에서 애늙은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내가 볼때는 내가 애늙은이인 것이 아니라
주위의 학우들이 너무 철부지인 것이다.
‘어린이’란 에고의 환상에 갖혀있는 그들을 대할 때면
답답한 것은 둘째치고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다.
어제는 몰래 유치원 봉고차를 따돌리고
낙성대 공원을 방문하여 강감찬의 유적지와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그 과정에서 기억난 것이 하나 있는데, 나는 강감찬이 아니라
강감찬에게 무찔러진 거란 족의 침략군이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가 왕왕있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거란 족의 침략군이었는데
나보다도 직책이 낮은 병사였던 것은 물론이요
요즘말로 하면 흔히 말하는 ‘고문관’이었다.
그럼에도 내 이름을 강감찬이라고 지은 연유는 뭘까?
고려를 침략한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까?
강감찬에게 무참히 무찔러진 수치심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강감찬에게 동경심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강감찬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게는 아직 거란의 피가 흐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역적이 되려는 생각은 아니다.
나는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
(이북에 태어나지 않은 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기필코 이름을 바꿀 것이다.
이름이 ‘강감찬’인 바람에 ‘강간찬’이라고
평생 놀림을 받아 왔다고 대충 둘러대면 될 것이다.
(실제로 머지않은 미래에 놀림을 받을 것이다.)
아직도 홍화진에서 대패한 뒤, 사망하던 때가 생생하다.
나는 전우들의 시쳇더미에서 하염없이 죽어가며
고향에 두고 온 아리따운 통구스족 약혼녀를 떠올렸다.
그녀는 나처럼 이 세상에 환생하였을까?
그렇다면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처럼 이곳 한국에 태어났을까?
거란의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만주나 투르키스탄의 동쪽 땅에 태어난 건 아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성인이 되어, 개명을 하고, 그녀를 찾아 가야지.
마지막 밤, 달빛에 반짝이던 그녀의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꼭 살아 돌아와야 해요.”
그때는 안타깝게도 그러지를 못했다.
과연 김강감찬은 외국인인 나에게
간장공장 공장장 보다도 발음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