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2013.10.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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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게를 참 좋아라 했습니다. 물론 기르거나 바라볼때의 게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먹을 때의 게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게를 먹기란 여간해선 쉽지가 않았습니다. 집안이 주변에 비해 특별히 가난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부유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때는 아무래도 지금보다 게가 귀하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게는 역시 쪄서 먹는 요리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게찜을 먹어본 적은 여지껏 채 열번도 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다섯번이 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조금 밖에 먹어보지 못했음에도 게찜이 맛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게가 먹고 싶을때면 주로 꽃게랑을 사먹곤 했는데 그것이 게맛살을 사먹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게맛살은 게맛은 커녕 게향조차 너무 인색합니다. 반명 꽃게랑은 게향이 풍부합니다.

 

저는 향을 중요시합니다.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또 향이지요. 말하자면 맛을 보면 혀가 즐겁습니다. 마찬가지로 향을 맡으면 코가 즐겁습니다. 또한 맛을 보면 배가 부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론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향을 맡으면 코가 부른 것입니다.

 

배는 불리지 못해도 코는 불리우는 것이 바로 향의 힘인데. 저는 어느날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제 손톱에서 이따금 게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삼사일에 한번꼴로 손톱 틈새에서 틀림없는 게, 그것도 게찜의 향이 나는게 아니겠습니까?

 

손톱에서 게찜 향이 나는 날이면 저는 일찌감치 이부자리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때로는 저녁을 거르기도 하며 게찜 향를 맡으며 공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럴때면 저의 비좁은 다락방은 어느새 커다란 배의 선실로 변하고 맙니다. 힘든 하루 일을 끝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그날 잡은 게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을 커다란 양동이채 쪄내서는 탁자에 늘어놓고 마구 마구 먹어대는 것입니다. 럼주도 몇잔 돌다보면 뱃사람 고유의 노랫가락도 더해집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현실에서 배가 고프다는 것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실제 배가 부르지는 않을지 몰라도 코가 부르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마음도 불러져 이내 마음이 부자가 된 상태에서 잠에 스르륵 빠지는 것입니다.

 

어릴적 살던 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밤새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가 잦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친 뱃사람들이 술에 취해 흥을 돋구는 소리, 폭풍우와 거센 파도가 부딪힐때 배가 흔들리는 소리일 뿐, 살랑살랑 안온한 선실 구석의 침대칸 같은 나의 비좁은 다락방의 평화를 깨트릴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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