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돌이 2013.03.28 03:41
조회 수 11867 댓글 3

1118statueofliberty6.jpg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식당에는 세계 여러 국가에서 한국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러 종종 방문한다. 


오늘은 드물게도 단란해 보이는 미국인 가족이 방문하였다. 그들은 서툰 한국말로 불고기와 해물파전, 그리고 모듬철판 볶음밥과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나는 이 식당에서 수많은 나라의 손님들을 대했지만, 항상 미국인을 상대할 때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초조하고 차분하지 못하며 다리가 후들거리고 기분이 황망하고 송구스러워 어쩔 수 없어진다. 

 

사실 제 3세계 손님들을 대할 때는 왠지 모르게 거들먹거리게 되는데, 연이어 그들이 주문을 지체하거나 음식에 관하여 질문이 많으면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약간 짜증을 내기도 하며 마음속으로 비웃음의 먼지가 일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인을 대할 때는 항상 마음이 초조하고 차분하지 못하며 다리가 후들거리고 기분이 황망하고 송구스러워 어쩔 수 없어진다.  

 

오늘 미국인 가족이 식당에 들어 섰을 때, 때마침 나는 테이블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 옆에서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으니 왠지 죄송스럽고 민망하여 김치볶음밥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몰래 숨어서 먹기까지 하였다. 만약 그들이 미국인이 아니라 제3세계에서 온 손님들이었다면 과연 나는 김치볶음밥을 부엌으로까지 들고 가 몰래 숨어서 먹었을까?

 

나는 온 힘을 다하여 미국인 가족의 서빙을 하였다. 반찬을 내려놓을 때는 그릇이 테이블에 닿는 소리를 줄이고자 약 45도로 비틀며 그릇을 내려놓았다. 발소리도 내지 않게 조심조심 걸었고 설마 침이 튀길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음식을 가져다 놓을 때마다 연신 들려오는 그들의 "Thank you"소리는 흡사 천사의 자장가처럼 감미로웠고 황송하였다. 나는 시중드는 내내 마음이 무척 복받쳤다.

 

그들은 "얌미" "얌미" 거리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7살로 보이는 꼬마 남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Pig uncle!" "Pig uncle!" 이라고 외쳐댔다. 나는 다소 짓긏은 농담이였음에도 마냥 귀여워 보였다. 꼬마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내가 지나가거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Pig uncle!" "Pig uncle!" 이라고 외쳐댔다. 부모는 연신 내게 "So sorry" "So sorry" 라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도리어 나는 너무나 죄송스럽고 민망하여 "아니에요!" "아니에요!" 라고 울부짖었다.

 

식사가 끝나고 나는 40대의 백인 남자에게 크레딧카드를 받아 계산을 하고 있었다. 미국인 가족을 멀찍이 지켜보시던 사모님이 미국인 가족에게 오시더니 돌연 "외국사람들은 매너도 좋다. 휴지 떨어진 거 다 주워놓고 가는 거 봐라. 한국 사람이었으면 어이구 쯧쯧" 이라며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셨다.

 

계산이 끝나고 그들은 짐을 추스르고 벗어 놓았던 옷을 다시 입으며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들이 식당 문 쪽으로 향하자 쟁반을 들고 그들이 식사를 했던 테이블로 가서 남은 음식들과 그릇들을 치우고 있었다. 그때 내 인생에서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6살로 보이는 천사 같은 여자아이가 쑥쓰러운 듯이 몸을 약간 꼬우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인형 같은 아이의 입술에서 감미로운 꿀이 흘러나왔다. "Bye bye!" 순간 세계가 사라지고 오직 나의 심장이 녹아 없어지는 일련의 과정만이 존재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때의 감동과 흥분의 물결이 나의 피, 세포, 영혼 안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을 느낀다.   

 

일을 파하고 인사동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그 미국인 가족을 마주쳤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어떤 물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두 눈을 정면을 향하게 하고 몹시 바쁜 걸음으로 그들 옆으로 비켜나가 올곧은 몸짓과 걸음걸이로 인사동 거리를 빠져나왔다.

 

옆통수에는 시선이 느껴져 따뜻했다.


Comment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