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돌이 2013.03.19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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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 유명한 감독도 왔었어. 뭐더라. 봉? 봉?"

"봉준호요."

"응. 맞아.  아무튼 니 생각이 나더라."


내가 종사하는 식당에 김기덕 씨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간 사실을 식당 주인 따님께서 말해 주었다.


"누구야! 금요일 저녁에 김기덕 왔었다"

나는 대화를 잇기 위해 "혼자서요?"라는 당치도 않는 소리를 입에 올렸다.


"아니. 스텝들하고. 영화 끝내고 쫑파티 하는 거 같던데. 새벽 세시까지 술 마시고 갔어."


오늘은 식당에서 밥을 주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도중 약한 출출함을 느꼈다. 무엇을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익숙한 종로3가의 길을 걸었다. '불고기 주는 삼대 냉면'집에 갈까 했지만, 왠지 내키지가 않았다. '불고기 주는 삼대 냉면'집을 30미터 즈음 지나쳐 갔을 때 "그냥 먹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시 30미터 즈음 되돌아가 '불고기 주는 삼대 냉면'집 앞에 섰다. "아니야. 돈이 좀 아까운데. 그냥 집에 가서 밥을 해먹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다시 20미터 즈음 걸어 갈 때쯤 "밥을 해먹기엔 너무 귀찮다"는 생각에 다시 20미터를 되돌아가 '불고기 주는 삼대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비빔냉면을 시키고 혹시 육수를 줄 수 없느냐고 종업원에게 물었다.


"찬 육수요?"

"네"


비빔냉면을 먹으면서 경마장 가는 길을 보았다. R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세계가 모두 허구의 세계인 것 같다는 요지의 말을 J에게 하고 있는 부분을 읽었다. 비빔냉면을 먹으면서 책을 읽자니 둘 중 어느 것에도 집중이 되질 않았다. 결국, 책 보는 것을 포기하고 비빔냉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읽지 않기로 했지만, 책을 다시 가방에 넣기가 왠지 모르게 껄끄러워 수저통 옆에 펼쳐 두었다.


비빔냉면의 면발은 질겼다. 한 젓가락씩 먹을 때마다 겨자 장을 듬뿍 뿌려 먹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성이 예전과 다르게 조금 이상해 진 것 같은 자각이 들었다. 비빔냉면과 함께 나오는 불고기의 맛을 보았다. 미세한 숯불 향이 베여있고 고기의 질이 예상외로 좋아 만족감을 느꼈다.


날씨는 쾌청했다. 사람에 따라선 약간 쌀쌀할 수도 있겠다. 올겨울 동안 입었던 검은색 폴로 패딩에 흰색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제 그만 입을까" 라고 생각하며 때마침 신호가 바뀐 신호등을 바라 보았다. 마주 걸어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보았다. 심장이 찔끔 찔끔 따가웠다. 그러나 금새 아무렇지도 않았다.


종로5가역 3번출구와 4번출구 사이를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며 나는 다짐했다. 

"오늘 하루도 잘 지내야지"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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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형 2013.03.19 23:00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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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성 2013.03.20 08:59

    오! 그곳은 '불고기 주는 비빔밥'도 있고 '불고기 주는 칼국수'도 있다는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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