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세태를 보면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을 공경하지 않고 되려 등한시하며 푸대접하기 일쑤인데 사실 늙은이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는 젊은이들에게 이로우면 이롭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 세상 온갖 직업을 가져보고 세상 온갖 사람들을 만나보고 세상 온갖 사건을 두루거치며 체득한 나 고바우 고병욱의 귀중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 생각이니, 젊은이들은 경거히 하지 말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독하여 값진 배움의 자리가 되도록 하라.

이 자리를 빌어 <고바우의 인간만사(人間萬事)>의 연재를 허락해주신 아베스타 아츠의 얼룩말 주필께 감사드리며, 아울러 본인의 조촐한 글에 날개를 달아주실 삽화가 임형순 여사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바우의 인간만사(人間萬事)  <제 1장 - 열사의 나라에서>
 

젊은 시절, 배관 기술 하나를 특기로 머나먼 열사의 나라 이라크로 파견 되었던 나 고바우 고병욱이는 일등 배관사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정작 나 자신의 배관 상태는 좋지가 않아 변을 보는데 제법 어려움이 있었소.

그것은 변이 나오지 않을땐 몇일이고 감감무소식이다가 나오려 할때면 예고도 없이 갑잡스레 나오려 하니, 채비도 미처 못하고 부랴부랴 사막으로 뛰나가야 했던게 여러번이요, 그때의 심정이란 인간이 아니오라 한마리 짐승, 그래 낙타라도 된 듯 싶었소.

굴러다니는 낙타 변 사이로 내 변 또한 아무렇게나 어우러지는 걸 보고는 퍽 불쾌했던 기억이 나오. 그럼에도 내내 기다려지는 것은 점심마다 제공되던 브라보 도시락이니, 그야말로 진미 자체였소.

브라보 도시락의 구성은 치킨이 무려 반마리에 감자 튀김, 야채 샐러드 한 줌, 케찹 일봉, 그리고 늘 식어있는 콜라가 한 병 제공되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열사의 땅에서 먹는 닭튀김이란! 그게 그리도 맛있을 수가 없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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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량 높은 통닭구이란 변의 통행에 불리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는데, 그 맛은 한국으로 돌아와 수십년에 걸쳐 수백여 닭집을 쏘다녀봤지만 근접하는 곳이 하나도 없었음은 물론이오.

그 시절, 또 하나의 참재미가 있었다면 밤 중에 한국 근로자들끼리 몰래 마시는 위스키 한 잔 이었는데, 중동 지역은 알코올이 금지인지라 추방과 처벌을 각오하고 어렵게 구해와 마시던 고 한 잔이 또 얼마나 달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것 아니겠소.

요새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얼뜨기 같은게, 오냐 오냐 주워진 것만 손 쉽게 먹고 마셨으니, 사막의 열풍 아래 잡아뜯는 향내나는 닭다리살이나 야밤에 털어넣는 몰래스키 한 잔 같은 진미를 모르고 지내는 것은 불행이라 할만한 것이겠지.

여하튼 그때의 고생으로 한국에 귀향하자마자 성동구 마장동 언덕 꼭다리에 있는 적갈색 주택을 한채 구매하여 대문에 펄럭이는 황기를 걸어 놓고서는 아랫목에 누워 서른도 되기 전에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루고 장가갈 채비를 끝마친 나 고바우 고병욱이 스스로가 대견하여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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