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보 2014.01.07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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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기의 달인, 시온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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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대 장기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장기'란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보유하고 있는 '오장육부'할때의 5대 장기(오장)가 아니고, 보드게임의 한종류인 '장군멍군'할때의 장기이다.

 

흔히 세계 5대 장기는 한국의 장기, 중국의 상기, 일본의 쇼기, 서양의 체스, 그리고 동남아의 막룩을 꼽는다. 일각에서는 막룩 대신 페르시아의 사트란즈를 꼽자는 의견도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있으며, 일개 사견으로 취급받는 실정이다.

 

나는 이번에 막룩을 한화 약 77만원에 구매함으로서 세계 5대 장기를 모두 보유하게 되었다. 말이 수제 돌조각으로 되어있는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비교적 싸게 구매한 편이다. 실은 상아로 만든 것을 구매하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고 귀하여 구할 수 없었다.

 

나는 다섯 종의 장기 세트를 등급별로 스무개 남짓 갖고 있는데, 구매하는데 800만원 이상은 족히 들였다. 그러니 급전이 필요할땐 장기만 매매해도 한 숨 돌릴 수 있을 지경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장육부'할때의 장기매매가 아니뢰다.) 즉, 장기는 나의 보물이자 재산인 셈이다.

 

<2>

 

나는 남들은 기껏해야 한 두 종이나 갖고 있을까 말까한 장기를 무려 다섯 종이나 스무개 남짓 보유한 대신, 남들이 거의 대부분 갖고 있는 몇가지 것들은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못한고 있다'기 보다는 '않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우선 '속옷'이다. 물론 '겉옷'은 있기 때문에 '속옷'이 없다는 것이 남들 눈에 적발되지는 않는다. 나는 어릴때부터 괜시리 속옷 입는 것이 꺼려지곤 했었다. 혹자들은 속옷이 없으면 곤란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물론 대용품이 있다.

 

속이 좀 안좋거나 장시간 외출해야 할때는 다쓴 거적대기를 붕대처럼 둘둘 말고 나간다. 속옷 나부랭이 보다야 이 편이 훨씬 안온하고 느낌도 좋다. 다만 화장실을 갈때, 특히 소변을 볼때도 일일히 거적대기를 풀어헤쳐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기는 하다.

 

둘째로 나는 '그릇'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어린 시절, 우연한 기회에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를 흉내내어 토기를 하나 구울 수 있었는데,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때부터 오직 그 빗살무늬의 토기만을 이용하여 음식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날 옆집 경석이와 태국의 전통 공 놀이인 '세팍타크'를 하다가 그만 토기를 깨트리고 말았는데, 이후로는 다른 어떤 그릇에도 정을 붙이지 못하였고 결국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대용품은 있다. 똠양꿍이나 갈비탕 같은 국종류는 인스턴트 라면이나 국수가 담겨있던 스티로품 용기를 주워 깨끗이 씻어 사용하며, 밥은 나무 잎파리로 동그랗게 뭉쳐서 손으로 뜯어 먹는다. 물종류는 일반 종이컵을 쓰거나 연습장을 한장 뜯어서 동그랗게 원뿔 형태로 말아서 사용한다.

 

셋째로 나는 '수건'이 없다. 바닥을 닦는 걸레나 장기알를 닦는 수건은 있지만 몸을 닦는 수건은 없다. 이 역시 어릴때부터 사용하지 않은 습관 때문인데, 보통 샤워를 하고나면 마를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편이다. 이 편이 건강에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급하게 외출할때는 젖은 채로 그냥 옷을 입는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그닥 곤란하지 않다.

 

이런 것들 외에도 남들은 다 있지만 나만 없는 몇가지 것들이 더 있긴 하지만 너무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것들이라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없다고 해도 나는 전혀 불행하지 않다. 왜냐하면 세계 5대 장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휴일이면 바닥에 각종 장기알과 말들을 마구 늘어 놓고는 마른 수건으로 정성껏 닦으며 오후를 보내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 또 장기판을 베고 낮잠을 자면 깊은 숙면을 취한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체스를 조금 둘 줄 아는 것 말고는, 다른 장기들은 전혀 둘 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안내서를 보지 않으면 배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주위에 장기가 취미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장기라는 말만 들어도 협심증에 걸린 사람처럼 갑갑해하며 손사례를 치거나 학을 때는 사람들은 있어도, 같이 둘 만한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나중에 장기를 함께 둘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여 미리 사둔 것이다.

 

오늘은 오동나무 상기판을 머리에 베고, 비자목 체스말을 손에 쥔채 한 잠 늘어지게 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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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를 즐기고 있는 청나라의 영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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