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은 않겠다. 어쩌면 이 글이 마지막 연재가 될런지 모르겠다. 본인이 절필하게 되면 손실을 보는 것은 본인 고바우 고병욱이가 아니라 바로 당신네들이다. 신비하고 독특한 늙은이의 값진 지혜와 판타지한 경험담보다 식당일하는 졸장부 꾀돌이의 잡설에 되려 관심을 기울이는 당신네들의 무지와 가공할만한 세속성은 과히 혀를 내두르고도 남을만하다.

그렇지만 늘 신경써주시는 얼룩말 주필과 삽화가 임형순 여사에겐 언제나 삼삼한 마음뿐이다. 얼룩말 주필께선 그간 연재문의 말투가 오래된 '하오체'라서 젊은이들 구미에 맛지 않는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고, 이번 연재문에 반영하였다. 항상 참다운 삽화를 그려주시는 임형순 여사께 언제나처럼 감사 드린다. 독신녀이기도 한 임형순 여사께서 하루빨리 좋은 결정 내리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곁에는 늘 고바우가 있을 것이다.


고바우의 인간만사(人間萬事)  <제 3장 - 임연수와의 조우>


의원님의 권고도 있고해서 건강 문제로 유기농 채식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대충 삼년전의 일이다. 그닥 믿을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마침 무공해 농사를 짓는다는 후배가 있어 그에게 부탁해 이것 저것 받아먹는 중이었다. 그러나 단 한끼도 고기반찬 없이는 수저조차 들지않을 만큼 강경파 육식인이었던 나로서는 여간 고된일이 아니었다. 꼭 만지고 씹을수 있는 대단한 고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안에 그저 고기성분만 속해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노른자 쓰다 남은 달걀 흰자도 괜찮고 슈퍼에서 천원에 서너개씩 묶어파는 냉면 육수도 괜찮다. 멸치 대가리도 좋고 북어 꼬랑지도 좋고 소나 돼지의 뼈가 분말로다가 아주 극소량 첨가되어있는 라면스프라도 좋다. 아주 미세한 고기 성분이라도 들어있다면 개의치 않고 먹을 수 있었으나 풀때기만 먹으려니 도저히 사람이 먹는 음식 같지가 않았다. 

가지나 버섯 등 비교적 씹을 수 있는 채소에다 불갈비 소스를 발라 구워먹어도 봤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교길의 코흘리개가 먹다 떨어트린 흙뭍은 가문어 조각이나 아랫집에서 정성껏 기르는 점밖이의 기름진 사료통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것을 보고 사람이 할짓이 아니다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갖은 고민끝에 전통의 지혜를 빌리기로 했는데, 그것은 바로 과거 충주 이씨가 사용했던 '자린고비(절인고비) 수법'이다. 게다가 나는 수전노여서가 아니라 웰빙 때문에 사용하는 수법이니 부끄러울 필요도 없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임연수어를 해풍에 건조시킨 것으로 사서 밥상 위에 메달아 놓으니 과연 말그대로 침샘이 원할하게 돌아 뻑뻑했던 식사가 잘도 넘어가는 것이었다. 역시 옛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구나! 싶었으나 한 편으론 오직 임연수어의 껍질만을 탐하다 집안을 그르친 임연수라는 광인이 자꾸 떠올라 씁슬하기도 하였다. 임연수와 달리 나는 참을성이 있다는 생각에 이를땐 몹시 부뜻하기도 하였다.

유명한 임씨라하면 아무래도 임꺽정과 임연수, 그리고 삽화가 임형순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임꺽정은 운동신경과 리더쉽이 뛰어나며 정도 많은 도적인지라 사람들을 적잖게 도와 유명하였고 삽화가 임형순 역시 마음도 유하고 그림 솜씨도 있으며 무엇보다 얼굴도 고와 훌륭한 것인데, 임연수는 음식을 탐하다 망해먹은 걸로 유명해졌으니 임씨들 중에선 아무래도 수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대의 임창정이나 임성훈이도 제법 유명하긴 하나 이들에 미칠 정도는 아니다.

좌우지간 그런 생각을 하며 방안 가득한 임연수어의 냄새를 피해 대청마루에 누워 잠에 들었을 때였다. 사실을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잠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그 중간의 상태였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내가 대청에 누워있자 누군가가 내 머릿결을 정답게 쓰다듬는 것이었다. 눈을 번쩍뜨니 누우런 비단옷을 입은 한 영감이 나를 내려다보며 게슴치레 미소지었다.

"고바우야, 눈을 떴느냐?"

깜짝놀라 헐레벌떡 몸을 일으켜 방구석으로 뛰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는 그걸로도 모자라 담요속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는 잠겨진 문을 투과한 것인지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와선 내가 덮은 담요를 공중의 개털을 털듯 사뿐이 집어던졌다.

"내 다름아닌 임연수일세, 그러니 그리 두려워말게나."
"이, 임연수라구요?"

"그래, 자네가 임연수어를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지극하여 잠시 그대 앞에 현현한 것일세!"
"임연수어의 껍질만을 고집하다 가세를 기울게했다는 바로 그 임연수님이란 말씀입니까?"

그러자 임연수는 순간 눈살을 매섭게 찌프리더니 호통을 쳤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로다!!"

호통을 들으니 나는 이내 두려워져 겁난 개처럼 꼬랑지를 내린깔고 넙죽 업드리고는 이마도 들지 못한채 겨우 물었다.

"사, 사실이 아니라구요? 그럼 사실은 무엇입니까?"
"내 사실을 고할테니 새겨 듣고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하여라."

임연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에헴!'하며 손으로 양쪽 무뤂을 위험있게 턱치고는 말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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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슬픔이 세가지 있으니 그것은 모두 임연수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중 첫째 슬픔은 수많은 백성들이 임연수어의 바른 명칭을 알지 못한채 이면수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그럴때마다 나란 존재가 임연수에서 이면수로 쪼그라드는 것만 같아 슬픔이 크다. 이면수라니 얼마나 품위없고 졸렬한 이름인가! 앞으로 너는 임연수어의 바른 명칭을 알리기 위해 앞장서거라!"
"예이! 알겠습니다요!"

"둘째 슬픔은 내가 임연수어의 껍질만을 좋아했다는 거짓된 속설이다. 물론 나는 임연수어의 껍질을 참으로 좋아하였으나 살점도 좋아하였느니라. 보다 정확하게는 껍질과 속살을 동시에 함께 그것도 적절한 비율에 맞춰 먹는 것을 즐겼느니라. 내가 껍질에 환장해 심지어 살점을 내버리며 오직 껍질만을 먹었다는 속설은 후세에 임연수어의 껍질맛에 반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무책임하게 멋대로 상상하여 지어붙인 것이다."
"그, 그러하옵니까? 예이! 받들어 모시겠습니다요!"

"마지막 슬픔은 슬픔 중에서도 가장 그득한 슬픔인데 바로 내가 임연수어의 껍질만을 밥에 싸먹다 명문이었던 가문을 졸딱 말아먹었다는 속설이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래서 생선 이름이 임연수어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어디 이성적으로 말이나 되는 소리냐! 당치도 않다! 우선 나는 부잣집은 커녕 양반도 아니었다. 나는 당시 일개의 어부, 쉽게 말해 뱃놈이었다. 어느날인가 황금 구렁이가 집안에 또아리를 트는 꿈을 꾸었는데 바로 그날 바다로 나가 그물을 잡아끄니 생전 처음보는 이름모를 생선이 걸려있는게 아니냐! 맛을 보니 최고 수준으로 고소한 것이 기가 막혀 임금께 즉시 진상하였고 맛을 본 임금은 그 맛에 감격하여 나에게 금은보화를 내리고 생선 이름을 내 이름으로 따서 짓도록 한 것이다. 나는 영광스러웠고 부자가 되었지만 이후로도 평생을 검소히 살았다. 알겠느냐?"
"예이! 알겠사옵니다요! 소인이 거짓들을 모두 바로잡겠습니다요!"

"그러니 내 어찌 임씨 중의 수치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임씨 중의 자랑이요! 어부의 중의 어부인 것이니라!"

임연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잠시 눈치를 보더니 임씨의 영웅으로 알려진 임꺽정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임연수의 말에 따르면 임꺽정은 일제강점기때 벽초 선생이 쇼셜리즘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프롤레타리아트 인민 영웅의 본보기를 만들어내고자 창작소설을 통해 임꺽정을 의적으로 둔갑시켰을 뿐, 백정 출신인 실제 임꺽정 도적당은 민가며 방앗간이며 가리지 않고 불을 지르며 민초들을 약탈하기도 하고 온갖 잔인한 짓도 서슴치않던 도당 중의 괴도당이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 임씨 중의 최고 영웅은 임꺽정이 아니라 바로 나 임연수인 것일세! 고바우, 너는 이를 백성들에게 바로 알리도록 하여라!"
"예이! 알겠사옵니다요!"

한편 나는 임연수의 얼굴이나 제대로 봐둘까싶어 용기내어 고개를 처들었으나 방안에는 임연수어내만 지독하게 진동할 뿐, 임연수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이읔고 눈이 저절로 감기었고 다시 일어났을때는 처음의 대청마루였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풍부하며 또 진솔하기도 하여 나는 이것이 일종의 신비체험이라 여겨졌다. 

나는 당장에 메달아놓은 임연수어를 떼다가는 뒷산에 승냥이 먹이로 냅다 던져버렸다. 다시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만나는 무서운 체험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임연수어 대신 굴비나 북어를 달아놀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단념했다. 굴비를 처음 낚았다며 참조기 선생이 나타날지도 모를일이고 어쩌면 '자린고비 수법'의 발명가인 충주 이씨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자린고비 수법'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기에 나는 물론 원할한 채식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지금은 다시 고기를 입에 댄다. 단, 이전보다는 조금은 건강을 생각해서 영양 발란스를 조절해가며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 고혈압에 좋다는 흑설삼도 꾸준히 복용한다. 그래! 내가 누군가? 다름아닌 고바우 고병욱이 아닌가! 고바우 고병욱이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고바우 고병욱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고기를 먹어야지 그것이 진정한 고바우 고병욱이 아닐까? 오죽하면 한때 별명이 고갈비였을까! 자기합리화일진 몰라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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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꾀돌이 2013.08.16 07:01
    이면수 회로 먹어 보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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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형 2013.08.16 23:37
    꾀돌이는 무병장수를 위해 날것이라면 사족을 못하는 식습관 개선을 신중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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