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박사 2015.10.19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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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고관대작들이 모여 살았던 전통의 부촌. 서울 성북구 성북동.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당시 나는 아홉 살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종6품의 벼슬을 받고 사회로의 첫걸음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아침 7시. 펭귄스프를 후루룩 마시고 허둥지둥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와 문을 잠그려는 찰나, 대단히 유명한 탐관오리로서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높은 할아버지의 카톡을 받았다.

 

"이제 너도 관직에 들었으니, 때가 됐느니라. 너에게 명탐관오리가 되는 비밀요술서를 사사하겠으니 매우 빨리 성북동에 들리거라."

 

당시 할아버지는 은퇴하여 본가 성북동에서 유유자적 말년의 나이를 향락과 퇴폐. 탐욕과 부정을 벗 삼아 보냈다. 나는 할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 없어 퇴근 후 성북동 본가 집으로 매우 빨리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번개를 던지는 제우스처럼 소리쳤다.
"오. 이제 오셨는가!"

 

나는 귀를 막으며 대답했다.
"네. 할아버님. 빨리 비밀요술서 인지 뭔지 그거나 줘요. 피곤하다고요. 빨리 집에 가서 아이온 해야되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쩡쩡 울려 진동했다. 
"이봐!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이 할아비랑 한잔합시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나는 푹 한숨을 쉬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마음이 약해 할아버지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당을 쓸고 있던 머슴 "점박이"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 문 앞에 섰다.
"네. 대감. 점박입니다."

 

할아버지는 광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외쳤다.
"청요릿집에 전화해서 돼지눈알찜 하나 하고 개구리심장튀김 하나 하고 쥐며느리알탕 하나 하고 고량주 네댓 병. 이렇게 시키거라! 그리고 "왕서방"한테 단단히 일러. 이번에도 배달오면서 음식 훔쳐먹으면 오늘은 더는 안 봐준다. 아주 개 잡듯이 조진다고 전해! 알아듣겠느냐!"

 

점박이는 문밖에서 허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렸다.
"예이. 알겠습죠. 대감."

 

왕서방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절친으로 나이는 31살이다. 청요릿집에서 배달일을 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왕서방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40분의 시간이 흘러 이윽고 왕서방이 철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핏대를 세웠다.
"네 이놈! 왕서방 왜 이렇게 시간이 늦었느냐. 네 녀석 또 음식 훔쳐먹었지!"

 

왕서방은 발을 동동 구르고 펄쩍펄쩍 뛰며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안먹었다해! 안먹었다해! 나 왕서방 안먹었다해!"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낮췄다. 살며시 왕서방 주위를 느릿하게 서성거리며 동정을 살폈다. 그는 마치 장난으로 쥐를 잡는 고양이 같았다. 탐색을 마친 할아버지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흠. 그래. 오늘은 손주 녀석도 왔으니 이만 하겠다. 그만 물러가거라!"

 

왕서방이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고 나는 잠시 왕서방을 볼까 하여 할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
"저 대변을 좀 보고 오겠습니다."
할아버지는 갔다 오라는 뜻으로 무언의 손짓을 했다.

 

뒷문 담벼락 밑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는 왕서방을 발견한 나는 그의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았다.
"왕서방! 오랜만이다!"
왕서방은 담배를 한 모금 들이키고 달빛에 비추어 푸르스름해 보이는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오! 반갑다해! 반갑다해!"
"그래. 잘 지냈는가? 재수씨는 건강하시지? 아이들은 잘 크나?"
"그렇다해! 그렇다해! 만사 오케이다해!"
 

왕서방은 갑자기 내 귀에다 대고 소근거렸다.
"사실은해! 사실은해! 아까 배달오다가 음식 훔쳐먹었다해! 안걸렸다해! 대감 놈은 바보다해! 바보다해! 개구리심장튀김 맛있다해! 맛있다해!"

 

나는 그런 왕서방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외쳤다.
"잘했다해! 잘했다해! 앞으로도 계속 훔쳐먹으라해! 훔쳐먹어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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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어떤 개같은 놈의 미친 자식이 위에 적은 정신병자 같은 글을 우리 집 지펠 양문형 냉장고 오른쪽 문에다 붙여 놓았다. 개를 찾습니다 전단지 뒷면에 적은 윗 글은 모나미 볼펜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굴 곰을 위협하는 방울뱀 꼬리처럼 떨리게 쓰인 글씨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그렇지만 나는 범인을 잡기 위해 가까스로 복원하여 이곳에 전문을 올린다. 혹시 윗 글을 쓴 범인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은 00700으로 제보 바란다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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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성 2015.10.19 22:29
    데뷔 초창기에 약수터에서 김정호('하얀나비'를 부른)에게 소주를 사주고 곡을 무료로 받았다는 어니언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