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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안간 시작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전율하는 사자의 포효와 같은 그것은 내 전두엽 피질을 관통하여 기어코 물질계에서 출현했다. 만성 피해망상 환자들이 복용하는 거북이 등껍질이 주원료인 "얏살쿰 풍선껌"을 제조하는 공장에 다닌 지 3개월. 그곳에서 나는 조금은 친해진 서른 일곱 살 알바형에게 인간적인 애정과 교류, 친밀을 나누고자 하여 말을 걸었다.

 

"신수가 훤해 보이십니다."

알바형은 싯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보여? 요즘 아침저녁으로 도룡뇽을 달여 먹거든."

나는 도룡뇽이 불쌍해서 눈물이 났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눈에서 광채가 납니다."

알바형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5초 정도 웃다 숨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강정호가 다쳐서 어쩌냐?"

 

나는 돌연 멈춰선 엘레베이터 안 승객처럼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대동여지도를 편찬한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김정호 또는 하얀나비를 작사, 작곡한 김정호는 알아도 당최 강정호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알바형은 이어서 열의 적으로 목청을 높였지만 내 귀에 입력 된 건 단편적인 단어들뿐이었다.

 

"피츠버그, 시카고 컵스, 와일드카드, 태클, 이루수, 더블 아웃, 본헤드 플레이, 더블 헤더, 블론 세이브, 방어율"

나는 이루수와 방어율의 단어를 포착하고선 유추했다. 

"야구 이야긴가 보군!"

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최대한의 야구지식을 총동원하여 말했다.

"해태의 선동열은 제구력은 좋아도 도루는 그저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해태의 유니폼을 참 좋아해요. 검은색과 빨강의 조화가 참 절묘합니다."

 

알바형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뜻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 젊은 애들은 고생을 몰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던데 말야. 사각팬티가 좋아? 팬티는 아무래도 삼각이지. 너 깔따구 있냐? 뭐? 지금껏 깔따구도 없이 뭐했냐? 야. 너 머리 좀 잘라라. 그게 뭐냐? "

그때 갑지가 뛰어들어온 공장장이 철심 박힌 쇠몽둥이로 내 엉덩이를 한차례 후려치고선 말했다.

"이 새끼. 누가 일하는 시간에 잡담하라 했니? 그래놓고선 월급 따박따박 받아먹지? 이 새끼 정신 안 차려? 직장이 늬집 안방이야?"

나는 어렸을 적 엄마의 하얀 명주 치마 속으로 들어가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시에 거북이 등껍질을 뜯으며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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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채호 2015.09.23 00:56

    아직도 인부에게 빠따를 때리는 싸이키델릭한 업체가 있다니, 눈물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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