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2015.07.07 15:01
조회 수 191 댓글 0

<1>


어렸을때, 아마도 미취학아동일때

각설이를 본 적이 있다.

거지가 아니고 각설이다.


거지는 주로 누워있거나 앉아 있지만

각설이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거지는 아무래도 거지이지만

각설이는 요즘 유행하는 버스킹 밴드와 맥이 같은 것이다.


엄마가 밖에서 각설이가 왔다며 구경하라고 나를 불렀다.

너댓명 정도 되는 각설이패였었는데

한 남자의 경우, 마치 분장을 한 것 처럼

얼굴이 몹시 벌겋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 분장이 아니라 술을 먹어서가 아닐까 싶다.

전문적인 고퀄리티의 품바 같은게 아니라

정말로 밥을 얻으려는 목적의 각설이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라는 유명한 구절을 실제로 노래했다.


사람들은 재밌어하며 바가지에 밥을 퍼 줬는데

각설이는  밥만 주면 어떡하냐고 반찬도 달라고 했다.


진짜 각설이였던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 오랜만에 생각났는데

한국에는 1980년대 중반까지도

각설이라가 실재했던 것이다.


딱 한번만 본 것으로 보아

근처를 동이나 구단위로 돌아다니는게 아니라

전국을 떠도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2>


80년대 중반, 성동구 사근동.


쌀을 얻으러 다니는 할머니도 한 분 계셨는데

이 할머니는 동이나 구단위로 활동하셔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허리가 많이 굽었었고 눈빛이 애절했다.


할머니에게는 하나의 소문이 따라다녔는데,

그러한 소문은 적선을 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인지, 시대가 변한 지금까지도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 할머니에게 붙어 있던 소문은

집이 굉장히 부자이며 그랜저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푼이라도 아낄려고 약아 빠져서

쌀을 얻으러 다닌다는 소리였는데

어린 내가 듣기에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얘기를

사람들은 더러들 믿었다.


지금도 지히철에서 구걸을 하거나 껌을 팔거나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들이 돈이 엄청 많이 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럴리가 있겠는가?

쌀을 얻으러다니는 할머니가 그랜저를 탄다는 헛소문을 퍼트릴만큼

각박한 세상인데, 아무렴 구걸을 해서 돈을 엄청 많이 벌기까지 하겠는가?


그러면 사람들은 다음 변명으로,

저 사람들은 게을러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을 하면 좋겠지만 못하는 사정도 있을 수 있고

사실 따지고보면 구걸을 하는 것 자체도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에게 이따금 천대를 받으면서도

술집 등을 돌아다니며 껌을 파는 일.

길바닥에 하루종일 누워있는 일.

이런 일들은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거지에게 돈을 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거지가 사실은 돈이 많다고 음해를 하거나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다고 폄하할 필요까지는 없다.

 

물론 정말 게을러서 거지가 된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거지들도 각자의 카르마와 사연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매정함을 숨기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실상을 조작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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