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호 2016.03.07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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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보다 25분 먼저 종로 5가 역에 도착했다.

놈은 내가 육회를 못먹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또 육회집으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거기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빈대떡 뿐인데,

나는 돼지고기가 들어있는 고기 빈대떡을 시켜야지, 마음 먹었다.

그것마저 놈이 반대 한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밖에 없다.


생일선물을 사긴 사야 할텐데, 나는 다이소에 들어가 대충 2~3천원짜리

놈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상품을 골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도를 검색해보니 다이소는 꽤나 멀었다.

역시 쓸모가 없을 해당화나 양상추의 씨앗을 살까도 생각했지만

씨앗을 파는 곳도 너무 멀었다.


지하도를 빠져 나오니 종로 5가 역 앞에 좌판이 하나 보였다.

고맙게도 그곳에는 놈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물건들만 팔고 있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금색으로 코팅된 칫솔이었다.

그러나 칫솔은 손님이 왔을때 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은 손바닥 근육 운동을 돕는 완력기였다.

그래! 이 완력기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1500원 주고 완력기를 구매했다.


육회집에서 놈에게 완력기를 내밀었다.

놈은 떫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가식적인 표정으로 웃으며

"이거 너무 고마운 걸! 요즘 안 그래도 완력기가 필요했거든." 하고 말했다.

나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라고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놈은 완력기를 한참 주무르더니

"요즘  꼬리뼈가 아팠는데, 이거 손가락 혈이 지압되서 그런지"

"꼬리뼈 통증이 완화되는 느낌인 걸! 정말 고맙다." 라고 말했다.


나는 육회와 더불어 고기 빈대떡을 시키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반대를 했다.

"순수 빈대떡을 시켜야지, 고기나 해물이 들어있는 건 참 빈대떡이 아니야!"


그러자 아무 생각없는 일행들도 녀석을 싸고 돌았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다 한 마디 했다.

"너희들은 육회를 먹지만, 나는 육회를 못 먹어! 나도 고기를 먹어야할 것 아냐!"


그러자 일행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것도 그렇다. 니 말도 일리가 있어."

"맞아. 주말인데 고기를 못 먹는 다는 건 좀 그렇잖아."


맛이 썩 좋진 않았지만 결국 고기 빈대떡을 시킬 수 있었다.

놈은 분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술이 두어잔 들어가자 놈은 내게 한 번 더 말했다.

"완력기, 정말 고마워! 덕분에 꼬리뼈가 좀 살겠어!"


술이 오르자 이런 저런 옛 일들이 생각났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온 완력기와 호랑이 기름,

또 항상 손 안에서 굴리시던 호두알 따위가 스쳤다.


또한 나 역시 21세기 초반에 꼬리뼈가 자주 아팠던 것도 떠올랐다.

나는 계속 완력기를 주무르고 있는 놈에게 말했다.


"완력기로 꼬리뼈의 통증이 개선될지는 몰라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

"무엇보다 하단전 차크라가 막힌 걸 뚫어야 해."

"그래야만 꼬리뼈가 좋아진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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