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때 미술경시 대회에 나간적도 있고 해서

나도 웹툰을 그려서 팔자를 펴볼까 하는 생각에

저가형 액정 타블렛인 '아티슐 D13'을 중고로 구매했다.


액정 타블렛을 냄비받침으로라도 쓴 건지

상당히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덕분에 꽤 싸게 35만원에 샀다.


직거래를 하러 나온 (아마도) 여자는

몹시 무뚝뚝하여 거래 내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멀리 성남에서 왔는데 좀 빼줄  수 없느냐는 요청에

아무말도 없이 1만원만 내주고는 바로 가버렸다.


상태도 나쁘고 화면 색깔도 형편 없었지만

그런데로 그림은 그러졌다.


젊은 시절 약 3년 간 방산시장에서

도배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서

도배를 하는 만화를 그릴 생각이다.


나는 도배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여자와 사귀었고

여자에게 차인 뒤에, 즉시 도배일을 그만 두었다.


벽지에 풀을 잘도 입히던 그 여자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귀었던 여자인데

순대국집 차남과 결혼하는 것 같더니

차남이 오토바이를 흠치다 구속되자

금새 이혼 하고는 지방에 있는 

피라미드 회사에 취업하였다.

몇년 전, 나에게도 물건을 사라고 전화를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도배일을 하던 그때가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많지는 않아도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고

투다리에서 꼬치구이와 소주도 곧 잘 먹었다.


나는 도배일을 하면서도 어리석게도

다 떨어져나가 시멘트가 보이는 내 방을

도배를 할 생각은 미처하지 못했다.


내 인생은 벽지가 떨어져나가

말 그대로 도배가 절실한 것이다.


이제와 다시 도배일을 하기는 뭣하지만

야심차게 도배 만화를 그림으로서

내 인생을 새롭게 도배할 것이다.


그러면, 어쩌면, 용희 곁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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