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보 2017.02.0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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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방이 개를 한 마리 데려왔다.

이디오피아로 여행을 가는 동안에 잠시 맡아 달라는 것이다.

나는 개가 꼬리를 살살 흔드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이 놈의 개는 좀처럼 꼬리를 흔드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너무나 게을러터져 왠만해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빛조차 너무나 흐리멍텅하여

이따금 죽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양질의 뼈다귀와 고기 통조림을 내놓아도

마지못해 뼈다귀를 핥는 시늉을 하거나

몹시 형식적으로 통조림을 우물거릴 뿐이었다.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영양물을 섭위한다는 식이었다.

물론 꼬리는 여전히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는데

맘방은 개를 대체 어떤 식으로 길렀기에

이다지도 무기력할까.

 

개들이 좋아한다는 

Beatles의 A Day In The Life와

Beach Boys의 Pet Sound를 틀어줘봐도

아무런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산책을나가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병원이라도 데려 가봐야 하나 할 때쯤

맘방에게서 엽서가 왔다.

이디오피아의 타나 호수가 그려진 엽서였는데

이렇게 적혀있었다.

 

개가 잘 움직이지 않아 걱정했을지 모르겠어.

사실상 개는 거기에 있을지 몰라도

실은 나와 함께 있거든.

 

개를 통째로 외국에 데려가는 게 힘들어서

물리적인 거죽과 그 거죽을 유지할 때 필요한

약간의 관성만을 자네에게 맡겨둔 것이지.

 

이곳 이디오피아는 참으로 멋진 곳이야.

특히 은제라가 몹시 맛있는데

개가 참으로 좋아해.

자네도 맛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는데!

 

다음번에는 자네도 함께 오면 좋겠어.

물론 자네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거죽과 관성은 거기에 그대로 둔채

핵심만 데리고 와야겠지.

 

참! 자네는 핵심이 없는 말미잘이어서

평생 이디오피아를 구경을 못할지도 모르겠군.

안타까운 걸. 잘 지내. 안녕!

 

나는 엽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맘방! 이 미친놈 같으니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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