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

by 동시성 posted May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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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모든 홍상수 영화의 주제는 '플라토닉은 전혀 없고 오직 욕정만 있는 ‘가짜 사랑’만을 다뤄왔다.

 

그의 영화의 감상평들을 살펴보면, 거짓에 익숙해 분간이 안가는 건지, 잘 속는 건지, 홍상수의 영화가 ‘솔직한 사랑 이야기’라거나 ‘가식없는 연애 이야기’이라거나, 심지어 ‘우리네 사는 이야기’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홍상수는 ‘가짜 사랑’만을 전문적으로 묘사하며 사람들의 허위와 거짓됨을 꾸준히 꼬집어 온 것이다.

 

(악취미적이라고 할 만큼) 정상적인 사람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으며, 모든 등장인물은 스스로가 자각하든 못하든. 타인을 속이거나 자신을 속이고 있으며, 주인공들은 오직 욕정 때문에 이성을 유혹하고 속이고 사기치거나 사기당한다. 더러는 데이트 강간 등을 일삼는 범죄자들도 등장하고, 가볍게 지나치는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얼빵하거나 최소한 진실되진 않다.

 

주요 등장인물들은 언제나 사회나 문화예술계에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더해 사랑도 예술도 삶도 허위로 사는 거짓된 세상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홍상수만의 ‘뉴웨이브’였다.

 

스무편이 넘는 영화를 거쳐오며 부드러워진다거나 유머스러워진다거나 불가사의해진다거나 여러 진화와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역설적인 방법으로 실상을 바라보게 하는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오랜 흐름과 관습을 무시하고 ‘진짜 사랑’을 다룬 홍상수 영화가 나왔으니, 김민희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밤의 해변에서 혼자>다.

 

이 영화는 홍상수 특유의 미니멀리즘하고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만 빼면 기존의 영화와는 뒤집어 놓은 것처럼 딴판이다. 마치 부정적인 세상이 긍정적인 세상으로 바뀐 것 같아 보인다. 완벽하지는 않다고 해도 나름대로 진실한 구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영희가 새롭다.  진짜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홍상수 영화에 한 번도 나왔던 적이 없다.

 

똑같이 술에 취해 있다 해도, 전에는 허위나 가식이나 욕정에 취해 있었다면, 지금은 사랑의 고통에 취해 있는 것이다.

 

‘가짜 사랑’만을 되풀이하며 조망했던 홍상수가 ‘진짜 사랑’이 담긴 영화로 돌아섰다는 것은, 최근 그의 행보와 관련되어서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의 가장 백미는 영희가 꿈 속에서 만난 영화 감독이 시를 읽어주는 부분이었다. 시의 내용이 참 좋았다.

 

<PS.>

 

많은 사람들이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 배우와의 관계를, 이전의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것 같은데, 구조만 비슷할 뿐,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홍상수 영화에 나오던 소위 ‘불륜’이라 불리우는 커플들은, 주로 몰래 숨어서 만났으며, 한번도 당당하거나 떳떳했던 적이 없으며, 진지하게 모든 걸 걸지도 않았다. 한철의 재미로 서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족에게 털어놓긴 커녕, 기껏해봤자 지방에 사는 자기 형한테나 찾아가 괴로운 척 쇼를 하며, 이혼을 원하는 정부(情婦)의 욕심을 비열하게 달랬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대중들의 입에 그들의 이름이 쉽게 오르내리고 있다. “함부로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지 말라”는 말도 있는 만큼,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나는 알지도 못하고 아는 바도 없어야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보이는 행보는, 이전의 홍상수 영화 속에 나오던 비겁한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홍상수의 이전 영화들과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차이만큼이나 다르다. 홍상수가 '홍상수 영화와 똑같다'는 등 구분이 없는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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