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맨 2020.10.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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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이 본사 직영(임시)으로 전환되었다.

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그곳에는 장명숙이 있었다.

 

 

먼저 명숙이 말했다.

본사 직원은 의자에 앉지 않습니다! 의자, 창고에서 가져오지 마세요!”

 

 

누군가 투덜거렸다.

아니, 영등포점에서도 뭐라 안 그랬는데...”

 

 

투덜대는 이는, 나와 토요일 밤에 교대하는 주말 야간 근무자이다.

나이는 40대 초, 자신은 본사 직영점 아르바이트만 한다고 했다.

 

 

근데 소식 들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야무졌다.

?” 나는 불안했다.

이주일 뒨데, 본사는 철수하고 새로운 점장이 계약했다네요. 어째, 계속 일 하실 거예요?”

, 저는 이곳에서 2년여 동안 일해 왔어요. 쉽게 떠날 순 없겠지요.”

나는 뒤이어 물었다.

계속 일 하실 거예요?”

아뇨, 저는 본사 직영만 해요. 따로 사업하는 게 있어서.”

그렇군요.”

본사 아니면 시급도 별로고 해서요.”

, 그렇군요.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필 굿 한 페트와 레귤러 얼음 컵, 그리고 담배를 샀다.

 

 

나는 퇴근하기 한 시간 전부터 줄곧 생각했던 안주를 만들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보랏빛 가지와 저번 주에 큰맘 먹고 산 이금기 두반장과 굴 소스가 나를 기다렸다.

 

 

나는 프라이팬에 불을 올리고 파 기름을 내어 가지와 두반장과 굴 소스를 마구 볶았다.

 

 

순식간에 볶아진 중국식 가지볶음과 맥주를 마시며 이주 뒤, 새로 오실 점장님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다음 날-

 

 

12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주말 오전 알바는 20대 초의 여성으로 편의점 일을 처음 해보는 것 같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것저것 물어본다.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나는 성심껏 이것저것 알려준다.

 

 

근데 장명숙이는 대체 누군데 의자에 앉지 말래요?” 나는 참을 수 없어 물었다.

아아. 평일 오전인데, 본사 직원이시던데.”

 

 

그럼 계속 서있으셨어요?”

 

 

아뇨, 저도 가끔씩 앉죠.”

 

 

매장 정리, 재고 조사, 페이스 업 등등 할 일을 끝마치고 나는 창고에서 의자를 꺼내와 자리에 앉는다.

 

 

아니, 손님이 많으면 몰라, 손님도 없는데 망망대해의 조타수처럼 무의미하게 멀뚱히 일어나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이러한 헛짓거리에 깊은 혐오를 느끼며, 특별히 장명숙을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다음 주-

 

 

주말 오전 알바와 교대하며 한두 마디 건네는 것은, 내게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돋는 새싹과도 같았다.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대화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3시에 퇴근 처리 부탁해도 될까요?”

그럼요. 전 잊지 않습니다. 000003 맞죠?”

.”

정확히 3시에 처리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참, 저 내일 시험 있어서 하루 쉬어요.”

시험이요?”

, 저번 주에 FC님한테 말 하긴 했는데 대타를 구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설마, 구하셨겠죠. 저번 주에 미리 말했으니.”

그럴까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전날부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명숙이 떠올라

 

 

편의점에 도착하니 탤런트 이승연을 닮은 40대 초의 여인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마스크 위로 보인 눈매가 매서워보였다.

 

 

, 주말 오후 알바인데요.”

, .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편의점 유니폼을 꺼내 입었다.

시재 먼저 확인 할게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직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아뇨, 저는 직원 아닌데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니, 제가 직원이라고요.”

. 그렇군요.” 하고 나는 겸연직하여 허허 웃어보았다.

 

 

그녀는 내게 창고에 있는 PC 앞으로 불렀다.

 

 

여기, 본사 오기 전에도 일하셨어요?

. 그렇죠.”

이따가 주말 야간 분한테 전해주세요. 전달사항이라고만 하면 알아들을거에요.”

, 전달사항.”

 

 

그녀는 편의점 유니폼을 벗고서 자신의 주황색 솜털 재킷을 입었다. 맵시가 매우 도회적이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선 편의점을 나갔다.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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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운몽 2020.10.29 05:54

    명숙은 그대가 무우제국 시절, 일종의 '칠면조' 일 때, 인근에 거주하던 일종의 '홍학'이었다. 명숙이 홍학답게 여유로운 오후 햇살에 실린 실바람을 즐기며 사색을 할때, 그대는 그 붉고 천박한 칠면조의 목젓을 울리며 시도때도 없이 괴성을 질러대, 명숙 홍학을 수백차례 놀라게 했는데, 그대는 지금 그 업보를 갚고 있는 셈이다. 명숙은 그대를 괜시리 앉지 못하게 함으로서, 그대가 과거 칠면조 시절부터 이어진 무례함과 방종함을 씻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이니, 달게 받아 들이라!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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