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화 2018.08.0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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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를 살펴볼 때, 칼 융이 그림자 속에 있는 금지된 것들의 저장고를 '집단 무의식'의 일부로 보았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좋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용어는 그런 생각과 공상이 모든 사람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감정을 상징으로 표현한다. 또한 누구나 자신이 멍청하고 못생겼으며 귀여운 데라고는 없는 실패작이라는 공포를 남모르게 내내 품고 있다.

 

  무의식적인 마음은 예의를 모른다. 지극히 무례한 개념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노숙자를 죽여라!"라는 말을 떠올리면 무의식은 그 말 그대로 의도를 갖는다. 운전할 때 누가 끼어들면 자기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상대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아주 솔직하게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해 보라. 상대방 차를 도로 밖으로 밀어내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주 박살내 버려. 절벽 끝으로 밀어 버려. 이렇지 않은가? 그것이 무의식의 사고방식이다.

 

  유머 감각이 도움이 되는 까닭은 잘 살펴보기만 하면 그런 이미지가 웃길 따름이기 때문이다. 하나도 무서울 것이 없다. 무의식이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이 그럴 뿐이다.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거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의 동물적 마음이 무의식의 차원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직하게 직시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해서 스스로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거나, 자기비판에 열을 올리거나, 비극적인 기분을 느낄 이유는 없다. 무의식은 원래 상스럽고 미개하다. 우리의 지성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은 정글에 남아 여전히 나무에서 줄을 타고 있다! 그림자 측면을 살펴보는 시간은 얌전을 떨거나 비위가 약한 척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간도 아니다. 무의식에서의 상징은 상징일 뿐이며, 천성 자체가 원시적이다. 상징을 의식적으로 다룬다면 상징으로 인해 제약을 받기보다 힘을 얻을 수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 [놓아버림] p130, p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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