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

by 안채호 posted Aug 07, 2018

 

< 집웅밑 >

 

두 번째 다락방의 구석에는 또 하나의 조그만 문짝이 달려 있었다. 무슨 놈의 비밀 공간이 이렇게 많은 거지? 문짝을 열어 손전등으로 구석 구석을 비춰 보았다. 목조 지붕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그러니까 평범한 ‘집웅밑’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대낮인데도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봉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문짝을 닫으려는 찰라, 손전등이 그만 구석의 검고 길쭉한 상자를 비추어 버렸다.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보아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천장에 뭐가 들었을지 모를 수상한 상자를 둔 채 발을 뻗고 잘 수는 없다. 오김서방은 어쩌면 이것 때문에 나에게 헐값에 집을 넘긴 것일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그 작은 문짝 안에 몸을 밀어 넣고는, 먼지 구덩이 위를 뱀처럼 기어 상자로 다가갔다. 오김서방의 조부가 친일 행각을 했다는 사실은 동기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여명의 눈동자’가 방영될 때면 동기들이 어색하게 채널을 돌리거나 화제를 전환했다는 것을 오김서방은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저 상자에는 그의 조부의 핵심 유품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가 작품을 남기고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오김서방의 조부는 저 검고 길쭉한 상자를 남겼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친일파의 유품을 천장에 두고 잔다면 틀림없이 매일 밤을 가위에 눌릴 것이다.

 

의외로 크지도 무겁지도 냄새가 고약하지도 않은 상자를 잡아 들고는 안 다락방, 바깥 다락방, 이층방을 차례로 내려와 거실 탁자에 상자를 겨우 내려놓았다. 마음이 다급했다. 먼지로 시커매진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었다.

 

< 상자 >

 

상자는 세로 2.5자(尺), 가로 0.4야드(yd) 정도의 길쭉한 직사각형에 두께가 3.6(in) 정도로 낮았다. 서예나 작은 동양화 정도를 넣을만한 액자 정도가 들어있을만 했다. 그러나 무게가 6드(lb)도 안 나갈 정도로 가벼운 것으로 보아 유리 자는 아니다. 겉면은 검은색 레자 원단이었는데, 두두려 보니 속은 합판으로 된 싸구려 나무 상자 같았다. 동품 은 것이 들어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긴장을 조금 뺀 다음에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오래된 의 공책들이 들어있었는데 대부분이 일기장이었다. 십년 이상을 꾸준써온 것이었다. 남의 일기장을 는다는 것이 멋쩍어 대겨 글씨체만 확인하니 틀림없이 오김서방의 것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써온 일기장을 천장 위에 내팽개쳐 버리다니. 돌려줘야 할까 생각해 봤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고 싶은 기이 있어서 이 일기장의 존재를 잊어버린 걸지도 모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기장이 여진 도들을 보니 전, 그러니까 어도 오김서방이 대도 다녀오기 전의 것들이었다.

 

사진첩 같은 것도 보이고 지도 여러장 보지만 펼쳐보지 않았다. 왜인지 내가 모르는 오김서방의 젊은 나날들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오김서방이 어버리고 싶어한 기이라면 나 시도 알지 않는 을 것 았다. 그러던 중 제일 밑바닥에서 다른 공들보다 훨씬 꺼운 용 노가 한 권 눈에 었다. 표지에는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이라고 검은 매직으로 여 있었다.

 

비망록.jpg

 

<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 >

 

도이칠란드? 글씨체를 보니 오김서방이 기도 하고, 아기도 했다. 오김서방도이칠란드? 매치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김서방은 인도인을 닮았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아무래도 일인는 영 거리가 었다.

 

괴퇴세나 니에 대해 한 번도 기해 본 적이 없었다. 히러나 나에 대한 심도 전무해 보다. 베토벤, 나스타샤 킨, 차, , 랑크 세지도 마찬가지다. 각해보면 과 관련된 것은 평생 입 밖본 적이 없었같은 오김서방이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것은 ‘오김서방의 비망록‘이 아니라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이다. 오김서방의 비록이라 수 있는 일기장들은 그냥 두는 것이 을지 라도,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은 그둬선 안될 것만 았다. 이것마저 덮어 버린다면 어렵게 이 상자를 집어낼 필요가 없었다. 마음을 먹고 노를 펼쳤다.

 

<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을 읽다 >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은 소설 안에 소설처럼, 여러가지 이야기가 죽이었고서나 시 은 것들도 더러 여 있었다. 아주 작은 자로 여져 예상외로 분이 많다. 아직 10분의 1 정도 에는 지 않았지만, 왜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인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의도를 고 썻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실제로 ‘아무의미도 없으니 ‘라는 서문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대로 옮겨적기로 한다. 내용이 많기 때문에 틈틈이 옮겨적을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불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될 것이다. 어쩌면 연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참견쟁이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덧붙이고 싶은 들을 덧붙일 것인데, 지처럼 ‘고딕체’를 사용하여, ‘명조’를 사용한 과 도록 할 것이다.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을 왜 옮겨적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글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오김서방의 락을 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자서 이 는 것이 안하거나 울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옮겨적어야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후의 모든 '명조체'는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 서문 >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자가 이 책을 손에 쥘지 상상도 안간다.

불행하고 저속한 처지에 놓인 자들이 많도다.

이 책은 반드시 어떤 자의 손에 들릴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자와의 운명을 시험할 수 있다.

만약 불에 태워진다면 유령들이라도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이 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읽지 말도록 하라.

의미가 없으나 절대로 읽지 않는 편이 좋을 자도 있다.

한시라도 빨리 의미있는 것을 찾아야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구태여 읽으려는 자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고 저속한 처지에 놓인 자들이 많도다.

 

이때 노트를 냅다 집어 져버릴 했으나, 어쩌면 도이칠란드인의 얄팍한 속셈에 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계속 읽어 나갔다. 하지만 어쩌면 계속 읽음으로서 도이칠란드인의 약팔한 속셈에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문장은 빨간 볼펜으로 굵게 강조되어 쓰여 있었으며, 곧 '문예창작반'이란 이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주는 길고 진해 樂安 吳氏로 태어난 펨케는

제비처럼 예뻤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 문예창작반 >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특별활동으로 ‘문예창작반’을 선택하였건만 큰 실수였다. 광인(지도교 사)은 아이들에게 강도 높은 문예창작을 요구하였다. 다른 수 없이 백수인 삼촌이 취미로 번역 중이라는 과테말라의 전래동화집을 가져와 배껴내기로 했다. 급우들은 과테말라의 전래동화는 커녕, 과테말라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표절시비에 걸릴 일이 없다. 광인이 연말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양장본으로 출판할 것이라는 '특활 문고지'에만 뽑히지 않도록 문장의 질만 적당히 떨어뜨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삼촌의 노트에 적혀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과테말라의 전래동화 같지가 않았다. 삼촌 이 말한 과테말라란 북중미의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삼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어떤 상상의 세계였단 말인가?

 

삼촌의 노트 속 존재들은 우선 인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과테말라는 커녕이요, 지구도 아니었다.  그들은 물질 존재가 아니었지만 물질보다도 단단한 에너지장에 속박되어 있었다. 카리스마를 지닌 수상한 존재는 그들에게 "스스로가 생명인 줄 알겠지만 생명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일제히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들이 생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이것은 전래동화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것을 학교에 써서 낼 수는 없다. 

 

스스로 무언가를 써보려고 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 창가에 앉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랍인을 닮아 별명이 '코란'인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열심히 쓰네? 좀 읽어볼 수 없을까?"

 

그는 당황해하며 거절했다.

 

"저기 미안해. 아직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그때 코란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경석이가 콧평수를 넓히며 말했다.

 

"현숙아. 내꺼라고 읽어볼래?"

 

나는 고마워하며 경석이의 노트를 받아와 펼쳤다. 대체 이  따분하고 우중충한 문예창작반에서 잠자코있는 이들은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우선은 그걸 확인해 봐야했다. 경석이의 노트에는 '오솔길 개척자'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 오솔길 개척자 )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은 가로지르는 숲은 매우 울창하여 숲이라기 보다는 요새라 할만 했고숲의 주인인 가지어트는 숲의 둘레에 철조망을 처놓고 고압전류를 흐르게 하여 사람들이 숲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은 철저하게 분단이 되었다.

게다가 숲의  옆으로 커다란 절벽이 쌍으로 솟구쳐 있었기 때문에,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숲과 절벽의 바깥을 빙 돌아야 했기 때문에 3시간도  걸렸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은 메마르고 험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인간사냥꾼족이 함정을 많이 파놓은 것은 물론이요, 독사와 맹독충들이 우글거렸고, 특히 날씨가 흐린 날에는 반인반수인 오마족까지 출연하여 날뛰기 때문에,  마을을 왕래하는 상인들은 전사와 법사를 고용해 무리를 지어 다녀야했다.

 

던전과도 같은 두 마을의 왕래길이 두려워, 태어나 한 번도 반대편 마을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메포루 강에 둘러쌓인 가뜩이나 작은 에그랜드가 이렇게 반으로 갈라져 있으니 주민들은 불편함은 매우 컸다. 에그랜드의 사정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에그랜드.jpg

 

용감무쌍한 용사이며 상인 중에서도 대상인이며, 대지의 정령과도 능통하는 법사 중에 법사인 아세르왓이 주민들을 대표하여 숲의 주인인 가지어트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세르왓은 말도 통하지 않는 오마족에게 마저 밥그릇과 짚신을 팔아낼 만큼 수완이 좋은 협상가였다. 숲을 찾은 아세르왓이 말했다.

 

가지어트! 숲의 왕이시여! 아름다운 숲을 당신 혼자 독점할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어떨런지요?”

 

가지어트는 단칼에 거절했다.

 

조상으로부터 내가 물려받은 숲인데, 그래야 하지? 사람들에게 개방해봤자 사냥이나 하고 쓰레기나 버리고 산불이나 내지 않겠는가?”

 

아세르왓은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작은 오솔길이라도 하나 내주어서, 에스토와 나즈카가 서로 왕래를 있게라도 해주시는 어떨런지요?”

 

가지어트는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마을을 잇기 위해 오솔길을 내는 대신에 나의 숲이 오솔길로 인해 둘로 갈라지게 것이 아니냐! 내가 그런 손해를 무릅쓰겠는가!”

 

그러나 협상에 뛰어난 아세르왓은 가지어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비록 전하의 숲이 아주 조금은 침해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가지어트님. 그러하나 선지자꼐서 말씀하시길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해 베풀어야 사후에 하늘나라에서 보상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가지어트님. 에그랜드의 백성들을 위해 작은 오솔길을 하나 내어주지 않겠습니까?"

 


 

 

Comment '2'
  • 김동화 2018.08.09 20:17
    인간사냥꾼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
  • 동시성 2018.08.10 10:21

    서적 <진실 대 거짓>을 보면 '사람사냥꾼족'이 '식인종'과 함께 95로 측정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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