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

by 안채호 posted Aug 07, 2018

 

< 집웅밑 >

 

두 번째 다락방의 구석에는 또 하나의 조그만 문짝이 달려 있었다. 무슨 놈의 비밀 공간이 이렇게 많은 거지? 문짝을 열어 손전등으로 구석 구석을 비춰 보았다. 목조 지붕의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그러니까 평범한 ‘집웅밑’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대낮인데도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고양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완전히 봉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문짝을 닫으려는 찰라, 손전등이 그만 구석의 검고 길쭉한 상자를 비추어 버렸다.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보아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천장에 뭐가 들었을지 모를 수상한 상자를 둔 채 발을 뻗고 잘 수는 없다. 오김서방은 어쩌면 이것 때문에 나에게 헐값에 집을 넘긴 것일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그 작은 문짝 안에 몸을 밀어 넣고는, 먼지 구덩이 위를 뱀처럼 기어 상자로 다가갔다. 오김서방의 조부가 친일 행각을 했다는 사실은 동기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여명의 눈동자’가 방영될 때면 동기들이 어색하게 채널을 돌리거나 화제를 전환했다는 것을 오김서방은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저 상자에는 그의 조부의 핵심 유품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가 작품을 남기고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오김서방의 조부는 저 검고 길쭉한 상자를 남겼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용기를 내야 한다. 친일파의 유품을 천장에 두고 잔다면 틀림없이 매일 밤을 가위에 눌릴 것이다.

 

의외로 크지도 무겁지도 냄새가 고약하지도 않은 상자를 잡아 들고는 안 다락방, 바깥 다락방, 이층방을 차례로 내려와 거실 탁자에 상자를 겨우 내려놓았다. 마음이 다급했다. 먼지로 시커매진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었다.

 

< 상자 >

 

상자는 세로 2.5자(尺), 가로 0.4야드(yd) 정도의 길쭉한 직사각형에 두께가 3.6(in) 정도로 낮았다. 서예나 작은 동양화 정도를 넣을만한 액자 정도가 들어있을만 했다. 그러나 무게가 6드(lb)도 안 나갈 정도로 가벼운 것으로 보아 유리 자는 아니다. 겉면은 검은색 레자 원단이었는데, 두두려 보니 속은 합판으로 된 싸구려 나무 상자 같았다. 동품 은 것이 들어있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긴장을 조금 뺀 다음에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오래된 의 공책들이 들어있었는데 대부분이 일기장이었다. 십년 이상을 꾸준써온 것이었다. 남의 일기장을 는다는 것이 멋쩍어 대겨 글씨체만 확인하니 틀림없이 오김서방의 것이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써온 일기장을 천장 위에 내팽개쳐 버리다니. 돌려줘야 할까 생각해 봤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고 싶은 기이 있어서 이 일기장의 존재를 잊어버린 걸지도 모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기장이 여진 도들을 보니 전, 그러니까 어도 오김서방이 대도 다녀오기 전의 것들이었다.

 

사진첩 같은 것도 보이고 지도 여러장 보지만 펼쳐보지 않았다. 왜인지 내가 모르는 오김서방의 젊은 나날들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오김서방이 어버리고 싶어한 기이라면 나 시도 알지 않는 을 것 았다. 그러던 중 제일 밑바닥에서 다른 공들보다 훨씬 꺼운 용 노가 한 권 눈에 었다. 표지에는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이라고 검은 매직으로 여 있었다.

 

비망록.jpg

 

<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 >

 

도이칠란드? 글씨체를 보니 오김서방이 기도 하고, 아기도 했다. 오김서방도이칠란드? 매치가 전혀 되지 않았다. 오김서방은 인도인을 닮았다는 소리는 종종 들었지만 아무래도 일인는 영 거리가 었다.

 

괴퇴세나 니에 대해 한 번도 기해 본 적이 없었다. 히러나 나에 대한 심도 전무해 보다. 베토벤, 나스타샤 킨, 차, , 랑크 세지도 마찬가지다. 각해보면 과 관련된 것은 평생 입 밖본 적이 없었같은 오김서방이다.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이것은 ‘오김서방의 비망록‘이 아니라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이다. 오김서방의 비록이라 수 있는 일기장들은 그냥 두는 것이 을지 라도,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은 그둬선 안될 것만 았다. 이것마저 덮어 버린다면 어렵게 이 상자를 집어낼 필요가 없었다. 마음을 먹고 노를 펼쳤다.

 

<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을 읽다 >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은 소설 안에 소설처럼, 여러가지 이야기가 죽이었고서나 시 은 것들도 더러 여 있었다. 아주 작은 자로 여져 예상외로 분이 많다. 아직 10분의 1 정도 에는 지 않았지만, 왜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인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의도를 고 썻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실제로 ‘아무의미도 없으니 ‘라는 서문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그대로 옮겨적기로 한다. 내용이 많기 때문에 틈틈이 옮겨적을 것이다. 때문에 이 글은 불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될 것이다. 어쩌면 연재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참견쟁이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덧붙이고 싶은 들을 덧붙일 것인데, 지처럼 ‘고딕체’를 사용하여, ‘명조’를 사용한 과 도록 할 것이다.

 
‘도이칠란드인의 비록’을 왜 옮겨적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뛰어난 글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오김서방의 락을 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자서 이 는 것이 안하거나 울해서 일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옮겨적어야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후의 모든 '명조체'는 '도이칠란드인의 비망록'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 서문 >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자가 이 책을 손에 쥘지 상상도 안간다.

불행하고 저속한 처지에 놓인 자들이 많도다.

이 책은 반드시 어떤 자의 손에 들릴 것이다.

그래야만 그 자와의 운명을 시험할 수 있다.

만약 불에 태워진다면 유령들이라도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이 책은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읽지 말도록 하라.

의미가 없으나 절대로 읽지 않는 편이 좋을 자도 있다.

한시라도 빨리 의미있는 것을 찾아야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구태여 읽으려는 자도 있을 것이다.

불행하고 저속한 처지에 놓인 자들이 많도다.

 

이때 노트를 냅다 집어 져버릴 했으나, 어쩌면 도이칠란드인의 얄팍한 속셈에 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계속 읽어 나갔다. 하지만 어쩌면 계속 읽음으로서 도이칠란드인의 약팔한 속셈에 넘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문장은 빨간 볼펜으로 굵게 강조되어 쓰여 있었으며, 곧 '문예창작반'이란 이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주는 길고 진해 樂安 吳氏로 태어난 펨케는

제비처럼 예뻤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 문예창작반 >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서 특별활동으로 ‘문예창작반’을 선택하였건만 큰 실수였다. 광인(지도교 사)은 아이들에게 강도 높은 문예창작을 요구하였다. 다른 수 없이 백수인 삼촌이 취미로 번역 중이라는 과테말라의 전래동화집을 가져와 배껴내기로 했다. 급우들은 과테말라의 전래동화는 커녕, 과테말라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표절시비에 걸릴 일이 없다. 광인이 연말에 자비를 들여서라도 양장본으로 출판할 것이라는 '특활 문고지'에만 뽑히지 않도록 문장의 질만 적당히 떨어뜨리면 될 것이다.

 

그런데 삼촌의 노트에 적혀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과테말라의 전래동화 같지가 않았다. 삼촌 이 말한 과테말라란 북중미의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삼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어떤 상상의 세계였단 말인가?

 

삼촌의 노트 속 존재들은 우선 인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과테말라는 커녕이요, 지구도 아니었다.  그들은 물질 존재가 아니었지만 물질보다도 단단한 에너지장에 속박되어 있었다. 카리스마를 지닌 수상한 존재는 그들에게 "스스로가 생명인 줄 알겠지만 생명이 아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일제히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들이 생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이것은 전래동화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것을 학교에 써서 낼 수는 없다. 

 

스스로 무언가를 써보려고 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 창가에 앉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랍인을 닮아 별명이 '코란'인 그는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열심히 쓰네? 좀 읽어볼 수 없을까?"

 

그는 당황해하며 거절했다.

 

"저기 미안해. 아직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서."

 

그때 코란의 뒷자리에 앉아있던 경석이가 콧평수를 넓히며 말했다.

 

"현숙아. 내꺼라고 읽어볼래?"

 

나는 고마워하며 경석이의 노트를 받아와 펼쳤다. 대체 이  따분하고 우중충한 문예창작반에서 잠자코있는 이들은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우선은 그걸 확인해 봐야했다. 경석이의 노트에는 '오솔길 개척자'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 오솔길 개척자 )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은 가로지르는 숲은 매우 울창하여 숲이라기 보다는 요새라 할만 했고숲의 주인인 가지어트는 숲의 둘레에 철조망을 처놓고 고압전류를 흐르게 하여 사람들이 숲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은 철저하게 분단이 되었다.

게다가 숲의  옆으로 커다란 절벽이 쌍으로 솟구쳐 있었기 때문에, 에스토 마을과 나즈카 마을을 왕래하기 위해서는 숲과 절벽의 바깥을 빙 돌아야 했기 때문에 3시간도  걸렸다. 게다가   돌아가는 길은 메마르고 험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인간사냥꾼족이 함정을 많이 파놓은 것은 물론이요, 독사와 맹독충들이 우글거렸고, 특히 날씨가 흐린 날에는 반인반수인 오마족까지 출연하여 날뛰기 때문에,  마을을 왕래하는 상인들은 전사와 법사를 고용해 무리를 지어 다녀야했다.

 

던전과도 같은 두 마을의 왕래길이 두려워, 태어나 한 번도 반대편 마을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메포루 강에 둘러쌓인 가뜩이나 작은 에그랜드가 이렇게 반으로 갈라져 있으니 주민들은 불편함은 매우 컸다. 에그랜드의 사정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다.

 

에그랜드.jpg

 

용감무쌍한 용사이며 상인 중에서도 대상인이며, 대지의 정령과도 능통하는 법사 중에 법사인 아세르왓이 주민들을 대표하여 숲의 주인인 가지어트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아세르왓은 말도 통하지 않는 오마족에게 마저 밥그릇과 짚신을 팔아낼 만큼 수완이 좋은 협상가였다. 숲을 찾은 아세르왓이 말했다.

 

가지어트! 숲의 왕이시여! 아름다운 숲을 당신 혼자 독점할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 어떨런지요?”

 

가지어트는 단칼에 거절했다.

 

조상으로부터 내가 물려받은 숲인데, 그래야 하지? 사람들에게 개방해봤자 사냥이나 하고 쓰레기나 버리고 산불이나 내지 않겠는가?”

 

아세르왓은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작은 오솔길이라도 하나 내주어서, 에스토와 나즈카가 서로 왕래를 있게라도 해주시는 어떨런지요?”

 

가지어트는 역시 단칼에 거절했다.

 

마을을 잇기 위해 오솔길을 내는 대신에 나의 숲이 오솔길로 인해 둘로 갈라지게 것이 아니냐! 내가 그런 손해를 무릅쓰겠는가!”

 

그러나 협상에 뛰어난 아세르왓은 가지어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비록 전하의 숲이 아주 조금은 침해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가지어트님. 그러하나 선지자꼐서 말씀하시길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위해 베풀어야 사후에 하늘나라에서 보상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가지어트님. 에그랜드의 백성들을 위해 작은 오솔길을 하나 내어주지 않겠습니까?"

 


 

 

 

경석의 글은 애매하게 거기서 끝이 났다. 나는 크고 작은 의문점이 생겨났다. 첫번째 작은 의문점은 아세르왓은 과연 가지어트에게서 숲의 오솔길을 개척하는데 성공할 것인가의 여부이고, 두번째 큰 의문점은 경석이는 어째서 이런 글을 색을 입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정성스럽게 쓰고 있냐는 것이었다.

 

즉시 경석에게 가서 물었다. 그러자 경석이 말했다.

 

“답변 해줄 수가 없어. 아직 결정내리지 못했거든. 뛰어난 협상가인 아레스왓의 언변의 창과, 강고한 수구주의자인 가지어트의 방패, 둘 중에 무엇이 이길지, 나 역시 고민 중이야.”

 

“그래. 좋아. 그렇다면 너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지? 사실 그게 더 궁금해.”

 

“그 질문에도 답변해 줄 수 없어. 나도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야. 나 어쩌면 아세르왓이 되고 싶은건지도 몰라. 아세르왓은 저 단순한 세계에서 뛰어난 대접을 받고 있잖아. 반면에 나는 지금 이 복잡한 세계에서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경석이 조금 안쓰러웠다.

 

“경석아. 우린 아직 청소년이잖아. 벌써부터 자신이 이 세계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걸 속단하기는 이르지 않을까?”

 

눈물이 살찍 맺힌 경석의 눈알이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경석이 거칠게 물었다.

 

“그렇다면 말해! 너 내가 이 세계에서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니? 응? 말해! 솔직하게 말해보라구!”

 

경석이의 목소리에서 왠지모를 한이 느껴졌다. 나는 도저히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별안간 복도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소리쳤다.

 

“지섭짱이다!”

 

그러자 여자 아이들이 우르르 복도로 뛰어갔다. 나도 그 틈새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소지섭을 닮아 인기가 좋은 배구부 주장이 나타난 척 속여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소란이 정리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경석은 더 이상 내게 묻지 않았다. 난 어쩌면 경석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 경석이 이 세계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될지 안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난 이상하게 그 순간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경석이 너도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면 쓸모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경석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면 그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맙소사! 정말 여기에서 끝나버리는 것인가. 별 대단한 내용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아세르왓이 과연 숲속의 오솔길을 개척해낼 수 있었는지를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가. 그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CA수업이 끝나고 반으로 돌아가려는 데, 바닥에 떨어진 노트가 두 권 보였다. 아마 아까 지섭짱 오빠 때문에 난리법석이 났을때 떨어진 것이리라.

 

나는 노트를 집어들고는 반으로 돌아와 읽었다. 첫번째 것은 박진희라는 여자아이의 것으로 ‘설날의 알참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설날의 알참이)

 

이번 설에 시골에 가면 알참이를 만나게 될 생각에 진작부터 두려웠다. 알참이는 누나가 처음 낳은 아들로서 태명이 알참이었는데, 내가 계속 태명으로 부르는 이유는 알참이를 낳고보니 마침 알이 쏙쏙 찬 것처럼 참으로 똘망똘망하게 생겨서, 사장어른이 지은 신병구라는 본명 보다 훨씬 어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겉으로 보기에만 알찬 것은 아니었다. 다섯 살이라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 큼의 지나치게 많은 ‘무언가’가 내부에 꽉꽉 들어차 있는 듯 하여 보는 사람이 위화감이 들어 쳐다보기 두려울 정도이다.

 

그 어떤 어른도 알참이 앞에서는 함부러 말을 꺼내지를 못했다.

 


 

알참이는 너무 짧았다. 다음 노트를 펼쳤다. 추가영이란 여자 아의의 것으로 제목은 '천방지축'이었다. 게다가 자전적인 소설인 것 같았다.

 

알참이는 너무 짧았다. 나도 저런 알참이 같은 사람을 안다. 친구인 구운몽의 당백숙이 그러하다.

 


 

(천방지축)

 

새학급이 시작되자 괄괄하기로 소문난 천미나와 방숙희와 지예림이 다가왔다. 그중 리더로 보 이는 천미나가 말하기를 자신은 원래 솔로였으나, 1학년때 방숙희를 만나 듀오가 되었고, 2학 년때 지혜린을 만나 트리오가 되었으니, 3학년인 지금은 나를 포함해서 콰르텟이 되어야 한다

는 것이다.

 

나는 왜 하필 얌전하고 말도 없는 나를 점찍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연찮게도 자신들의 성씨 가 마침 ‘천방지’인데, 기왕 그렇게 된 김에 ‘천방지축’을 꼭 이루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알디시피 ‘축씨’가 아니라 ‘추씨’인데, 내가 끼면 ‘천방지추’가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또래의 ‘축씨’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서, 대신 나의 이름 ‘가영’의 ‘ᄀ’자를 앞의 성씨 ‘추’자 밑으로 당겨서 ‘추가영’을 ‘축아영’으로 삼으면 된다는 것이다. 덧붙이길 ‘추가영’이란 발음을 얼핏 들으면 ‘축아영’으로 들린다고 하였다.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납득한 나는 ‘천방지축’ 콰르텟에 가입하였다. 그날부터 나는 그들과 밥 을 먹고 수다를 떨고 어디든지 함께 다녀야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의외로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괄괄한 그들과 함께 하다보니 줄곧 내성적인 줄만 알았던 내안의 외향적인 모습을 발 견하기도 했다.

 

어느날 CA시간에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고 얌전했던 황선미가 다가와 물었다. “가영아. 너 어떻게 하다가 그런 날라리 들이랑 친구가 된거야?”

 

나는 대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름 때문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한참 뜰들이다 대답해낸 궁색한 답변은 겨우 이거였다. “글쎄, 예정된 운명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황선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개네들이 니 운명의 친구라도 된다는 말이야?”

 

대답하기가 곤란해진 나는 나도 모르게 화를 내며 말했다. “니가 알바 없잖아!”

그러자 선미는 두려워하면서도 섭섭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거의 화를 낸 적이 없던 나는 스스로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어느새 조금은 변해 버리고 만 것이다. 사람은 다들 이렇게 변하는 건가? 나는 앞으로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변해버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김수경과 박진희가 다가와 나를 학교 뒷편의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유물이 된) 소각 장으로 데려갔다. 먼저 눈이 날카롭게 찢어진 김수경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 요즘 많아 나대더라? 천민(천미나의 벌명)이랑 친해졌다고 세상이 물로 보이니?”

이어 덩치가 씨름선수 만한 박진희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두꺼운 참나무 가지로 바닥을 북북 긁으며 말했다.
“계속 그렇게 나불거리다간 이곳 소각장에서 아주 소각시켜 버릴 줄 알아!”

 

예전 같았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지만 왜인지 이제는 별로 무섭지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자 김수경이 소리쳤다. “썅년아! 눈 안 깔아?”
박진희도 보탰다. “진짜 뒤질래?”

 

나는 말했다.
“얘들아 진정하고 이성적으로 얘기해보자. 내가 왜 너희들에 의해 뒤져야 하는 거지?”

박진희는 참나무 가지를 휘두르며 덤벼들려 했으나 김수경이 이를 제지했다.

“이성? 좋아. 내 똑똑히 말해주지. 네가 요즘 천민이랑 친해졌다고 함께 천민이라도 된 마냥 설치고 다니는 게 보기 아니꼬와서 그런다. 왜!”

 

“그러니까 내가 얌전하게 있다가 친구들이랑 활발하게 다니니까, 그게 화가 난 다는 거네?”

박진희는 “어디서 주둥아릴 함부로 놀려!”라고 외치며 또다시 덤벼들 듯 했으나 김수경이 재 차 제지했다. 김수경은 말했다.

“응. 맞아. 화가 나. 너 같은 애들은 찌그러져 있어야 마땅한데, 나대는 꼴이 화가 나!”

 

나는 항변했다.
“왜 내가 찌그러져 있어야 하니? 만민이 평등한 시대에 너무 무리한 요구 아냐?”

김수경은 히스테릭한 상태로 말했다.
“바로 그런 말! 그런게 넘너 맘에 안 들어! 지금 여기서 만민이고 평등이고 가 왜 나와! 수업 시간에도 보면 넌 항상 너무 블라블라 한다구!”

박진희는 김수경의 옆에서 참나무 가지를 주물거리며 계속 폭력을 부추겼다. “까자! 응? 제발 까자! 천민 땜에 그래? 그년들도 내가 다 까줄게. 응응!?”

 

김수경은 박진희를 자제시키고 작정한 듯 말했다.
“너 개네들이 왜 놀아주는 지 알아? 다 니 이름 때문이야. 개네들은 강박증에 걸린 변태들이 라 니 이름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천방지축을 이루려 한거라구. 내가 모를줄 알아? 그러니까 넌 개네의 진짜 친구가 아니야. 단지 이름으로만 맺어진 유명무실한 사이라고!”

 

그렇게 말하던 중에 김수경의 눈의 동그랗게 커졌다. 왜인가 보니 ‘천방지‘가 나 축을 구하러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미나가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우리 축이를 괴롭히고 있냐앙~?”

 


 

읽다 지쳐 관뒀다. 나중에 다시 읽을지도 모른다.

Comment '2'
  • 김동화 2018.08.09 20:17
    인간사냥꾼족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
  • 동시성 2018.08.10 10:21

    서적 <진실 대 거짓>을 보면 '사람사냥꾼족'이 '식인종'과 함께 95로 측정되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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