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2018.06.27 06:39
조회 수 22 댓글 1

 

길을 가다 저 앞에 반짝 거리는 느낌이 있어 다가가니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 짜리 지폐였습니다.

 

구로동에 사는 류영배씨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항상 얻어먹기만 했으니, 오늘은 한 턱 쏘겠다고.

 

류영배씨는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천하의 구운몽이 술을 사겠다고 하니

하고 있던 생업 마저 제쳐두고 온 것입니다.

 

원래 갖고 있던 8900원을 합치니 총 58900원이 되었습니다.

6만원에 가까운 거금이 있는만큼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는 류영배에게 네가 조금만 돈을 합치면

저가형 참치집에서 실장님 스폐셜을 먹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겸손한 류영배씨는 자신은 아직 실장될 그릇이 아니라고

한사코 마다하며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자네를 안지 어언 20여년이 되는데"

"20년 만에 처음 술을 사는 만큼, 온전히 자네 돈으로 목을 축이고 싶네."

 

우리는 고민을 하였습니다.

 

'어디를 가야 술을 잘 사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대낮이긴 하지만 역시 고깃집을 가야할까?'

'소고기, 돼지고기? 요즘 유행하는 양고기?'

'중국집에 가서 청도나 마실까? 청도는 너무 비싸다.'

'일식집을 갈까? 국산집을 갈까? 월남집을 갈까?'

 

고민을 하던 차에, 평소 미식가라 자칭하는 꾀돌이에게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류영배씨는 마침 화장실에서 용무을 보던 중이었습니다.

 

"꾀돌님, 지금 오만팔천구백원으로 두 명이서 술과 요리를 먹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요?"

 

꾀돌이가 말하기를,

"우리집에 와. 내가 마침 삼강오룡탕에 직접 담군 술을 마시려던 참이니까!"

"특별히 두 명에 코스로 오만팔천구백원으로 모시겠네!"

"자네니까 특별히 봐주는 거야."

 

용무를 마치고 나오는 류영배에게 잔뜩 기대를 시키고 꾀돌네를 갔습니다.

한옥집인 꾀돌네는 입구부터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류영배씨는 손으로 코를 냅다 막으며 말했습니다.

얼마나 냄새가 심했으면, 급하게 코를 막다 자신의 코를 거의 때릴 뻔 했습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냄새야! 태어나서 이렇게 고약한 냄새는 처음 맡아보는 걸!"

 

이에 꾀돌은 일침을 놨습니다.

"들어오자 마자 버르장머리 없게 무슨 호들갑들인가!"

 

나는 애써 류영배를 진정시키고, 꾀돌네 마루에 앉혔습니다.

이상야릇한 냄새는 더욱 진동을 했습니다.

코가 막힌게 다행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이런 냄새를 날 수가 있는 거지?'

'쇠파이프에 메주를 발라 선지와 고무를 넣고 끓였다 반년 정도 삮히면 이런 냄새가 날까?'

 

꾀돌이는 뚜껑이 덮힌 뚝배기를 들고 나오며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먹어보기는 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삼강오룡탕이다!"

"행여나 삼강오륜이랑 햇갈릴 생각은 아서라!"

 

보자마자 왜 반말을 하냐며 항의하려던 류영배씨를 겨우 만류했습니다.

"꾀돌이는 원래 저래. 존대말을 배우지 못했나봐."

 

꾀돌이는 특유의 제스쳐와 함께, 한껏 뽐을 내며 요리를 설명했습니다.

"세가지 강한 것과 다섯 가지 용을 넣어 끓인 것이 바로 삼강오룡탕이란 말씀!"

"재료를 어디서 구했냐는 등 비법을 알려고 들면 국자로 맞을 것이란 말씀!"

 

드디어 뚜껑을 열었습니다.

갈색을 바탕으로 거무스름한 것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냄새를 참지 못했는지 류영배씨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꾀돌이는 이를 감동의 눈물로 착각했는지 에헴! 하며 

보다 젠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더기들이 있었는데,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용을 넣었다더니, 어떤 파충류라도 집어 넣은 것일까요?

어쩌면 나무나 광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삼강오룡.jpg

 

꾀돌이는 말했다.

"자자, 사양하지 말고 들게나. 여기 함께 마실 반주를 준비했다네."

 

술병 안에는 가시 같은 것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용의 비늘과 발톱 조각으로 만든 조갑주라네."

꾀돌이는 조갑주를 한잔씩 따라 주었습니다.

 

나는 도저히 그것들을 먹고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류영배씨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삼강오룡탕을 떠먹고는 조갑주를 달게 마셨습니다.

 

꾀돌이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물었습니다.

"맛이 어떤가?"

 

류영배씨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말했습니다.

"바로 그 맛입니다."

 

꾀돌이는 나를 쏘아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도 어서 들게! 친구는 잘 먹고 있지 않은가!"

 

꾀돌이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있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꾀돌님. 죄송합니다. 저는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습니다."

 

꾀돌이는 류영배씨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래. 자네라면 내키지 않겠지."

"저 친구가 잘 먹는 이유는, 저 친구에겐 저게 일종의 고향의 맛과도 같거든."

"그러니까 저 친구가 지옥에 있었을 때 먹었던 음식과 똑같은 맛일게야."

"오늘 저 친구에겐 저게 필요했다네. 저 친구는 중요한 선택에 기로에 놓여있거든"

"이걸 먹어야 무의식으로라도 지옥을 상기하고, 더 이상은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게 돼."

 

류영배씨는 우리의 대화를 듣지도 않고 계속 먹어대기만 했습니다.

뭔가 질겅질겅 거리는 것을 열심히도 씹었습니다.

 

꾀돌이는 한 스푼을 떠서 내밀었습니다.

"자. 자네도 온 김에 아쉽지 않게 경험삼아 맛 좀 보게나."

"단테의 신곡을 읽는 것보다 더 생생한 체험이 될꺼야."

 

나는 용기를 내어. 꾀돌이가 내민 수저에 담긴 그 거무스름한 것에

혀를 잠깐 대어 보았습니다.

 

아뿔싸!

그것은 형언할 수 없는 지옥의 맛이었습니다.

인간의 혀가, 미각이 이렇게 까지 섬세했던가, 의문이 들 정도로

깊고도 고약한 지옥의 참맛이었습니다.

 

내가 아연실색하자 꾀돌이는 즐겁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허나 류영배씨는 벌써 두그릇째 묵묵히 삼강요룡탕을 먹은 것도 모자라 

어느새 조갑주도 거의다 비우고 있었습니다.

 

꾀돌이는 그런 류영배씨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 음식들이 비록 지옥맛을 흉내내긴 했지만, 건강에는 좋다네."

"특히 정신건강에 말일세!"

 

꾀돌네를 나와서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류영배씨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전철 행로가 달라 헤어지던 차에 겨우 한 마디 물었습니다.

"저기, 오늘 괜찮았어?"

 

그러자 그의 낮빛이 갑자기 밝아지면서 말했습니다.

"응. 좋았어. 술이 독해서 필름이 끊겼는지, 사실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근래에 고민을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그걸 먹고나니까 생각이 잘 정리됐어."

'너무 욕심내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그런 마음이야."

"아무튼 오늘 거기에 데려다줘서 무척 고마워."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비록 나는 58000원이나 쓰고, 지옥의 맛을 한 방울 느꼈을 뿐이지만 

그래도 류영배씨에게는 도움이 되었다니 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일입니다.

 

지옥의 맛을 보여준 꾀돌이는 알다가도 참 모를 사람입니다.

그가 살고 있는 익선동의 한옥집은 오늘도 참 허름합니다.

 

한옥.jpg

 

Comment '1'
  • profile
    오줌보 2018.08.05 09:51
    곰방이도 재주가 있다더니, 꾀돌이가 제법!
?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게시판 설명 관리자 2013.09.25 1610
76 막심일기 막심일기11 - 엘리멘탈 린다 file 막심 2018.09.18 25
75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11화 <이성> file 김동화 2018.07.03 19
» 기타 삼강오룡탕을 맛보다 1 file 구운몽 2018.06.27 22
73 기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지나며 3 file 안채호 2018.06.21 31
72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10화 <에고> file 김동화 2018.04.09 33
71 막심일기 막심일기10 - Let My Fire file 막심 2018.03.16 30
70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9화 <추억 속의 형> file 김동화 2018.03.13 28
69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8화 <착한 마음> file 김동화 2018.03.06 17
68 막심일기 막심일기9 - 지하에서 돌아온 막심 막심 2018.02.10 35
67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7화 <요강> 2 김동화 2018.01.23 51
66 기타 강감찬 8 file 김강감찬 2017.09.26 218
65 생생탐구 조금상의 생생 탐구인생 제6화 <내면> 김동화 2017.09.25 3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