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화 2018.01.24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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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활발하게, 끊임없이 요강이 생각난다. 진 누런 요강이 솜뭉치 같은 회색 구름 사이에 둥실 하고 떠다닌다. 쌀밥을 떠, 입안에 넣는 순간에. 202호 버스의 출입문이 열릴 때. 가랑비가 내려 아무래도 귀찮아 우산을 접을 때. 신호등 파란불을 기다릴 때.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옛 기억이 떠오를 찰나, 나는 요강을 생각한다.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나와 요강과의 연결지점을 도출해 낼 수가 없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일까. 도대체가 지긋지긋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제일 처음으로 칭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화장실 문화다. 기분을 감미롭게 이완시키는 음악이 흐르고 넉넉한 휴지와 첨단 손 세척 시스템. 과연 매끄럽게 빛나는 흰색 변기들.

 

나는 이 땅 위에 태어나서 요강을 본 적도 없거니와 당연히 써 본 적도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나 보았겠지. 아무렴 어때! 제발! 요강 따위 집어치워!

나는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내 머릿속에 요강이 찾아 온지 21일째.

절판된 책인 블라바츠키 여사의 “신지학의 열쇠”를 찾기 위해 황학동 시장을 탐색하던 도중 뒷머리에서 뜨뜻미지근하면서 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21일째 내 머리를 온통 휘저었던 진 누런 요강이 떡 하니 대로변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요강 안에는 야구 볼, 형광펜, 양초, 휴대폰 배터리, 유리구슬, 파리채. 컬러 고무줄 따위가 뒤엉켜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분하여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골동품 상인에게 따져 물었다.

 

“아저씨! 요강을 이렇게 막 굴려도 되는 거예요?”

상인은 화들짝 놀라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이거 요강 아니에요.”

“뭐가 아니에요! 요강 맞잖아요! 요강 맞잖아요!”

“요강 아니야. 그만 저리 가라.”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이거 얼마냐고요!”

“요강 아니라니까.”

“요강 맞잖아요! 왜 자꾸 아니라고 그래요!”

골동품 상인은 떨어진 담배를 다시 물며 말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아저씨. 그렇게 안이하게 살지 마세요. 요강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렇게 둡니까? 예? 여기 5천 원 두고 갑니다. 요강은 제가 가져갈게요. 물론 안에 있는 잡동사니는 포함하지 않고요.”

“저거 요강 아니래도.”

“갑니다. 인생 똑바로 사세요.”

 

나는 설움이 복받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요강을 부둥켜안고 황학동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 영식이 형과의 약속이 있어 쌍제이 호프 클럽에 방문했다.

“야. 그게 뭐냐?”

“내 요강이야. 귀여운 나의 요강.”

 

나는 비단에 쌓인 요강의 오른쪽 하단 부분을 쓰다듬으며 흡족해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 요강하고 무엇인가가 있나봐. 보면 볼수록 어떤 심리적 동일성을 느껴. 내 표층적 의식은 물론이고, 내가 알 수 없는 무의식의 핵심이 이것과 특별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아. 그 특별한 반응은 앞으로 차차 자세히 살펴보려고.”

 

영식이 형은 차갑게 열이 올라있는 미대륙 오색태양 칵테일을 마셨다.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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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심 2018.02.10 15:39
    전생에 소중하게 자기가 썼던 요강을 다시 산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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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보 2018.08.05 18:52

    요강에 집착하는 남자들은 심리학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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