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광수의 '그 섬에 가고 싶다'

by 동시성 posted Apr 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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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화질 좋은 포스터 한 장 찾아보기 힘든 박광수 감독의 1993년작, <그 섬에 가고 싶다>를 보았다.

 

박광수 감독은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을 찍은 감독으로, 지금까지 모든 작품을 다 봤었지만 <그 섬에 가고 싶다> 만큼은 구하기가 힘들어 못보다가, 누군가가 VHS 테잎을 떠놓은 걸 구해서 볼 수 있었다.

 

지난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에도 '작가주의'적이며 '뉴웨이브'적인 작품을 하는 영화 감독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배창호 감독과 박광수 감독과 장선우 감독을 '삼총사'로 꼽으며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박광수 감독은 그 중에서도 '사회파' 감독으로서 사회에 던져야할 중요한 메세지를 예리하게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한다. 누군가는 비슷한 포지션으로 정지영 감독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정지영 감독의 영화는 대개 위악적이다. 하지만 박광수 감독의 영화는 진실하다. 그 차이는 굉장한 것이다.

 

박광수 감독은 당시로서는 커다란 제작비를 들인 <이재수의 난>의 흥행 실패로 영화 제작의 길이 막혀 버렸는데, 그 점이 개인적으로 두고두고 아쉽다. (마찬가지로 장선우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배창호 감독은 '흑수선'이 실패하며 길이 막혔다.) 이러한 뛰어난 감독들의 단 한 번의 흥행실패로 활로가 막혀버린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이 21세기에도 꾸준히 영화를 찍었다면, 한국은 세계 영화제에서 훨씬 많은 상을 받았을 것이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위악적인 것은 물론이요, 사악한 부분까지 엿보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나, 변태악의 세계를 잘도 포장해내는 박찬욱 같은 감독의 영화가,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로서 세계에 알려졌다는 것은 매우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김기덕이나 박찬욱 같은 부정적인 감독들이 어지럽히는 소위 '작가주의' 영화판에서, '진짜'를 보여주고 있는 이창동 감독이 조감독과 각본으로 참여한 영화이다. 1950년대의 작은 섬에서 작은 동네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의 삶과 정서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있다. 그 리얼리즘이 바탕에 있기 때문에, 나중에 있을 슬픈 사건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게 된다.

 

영화는 6.25때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그 이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좌익으로 몰아 학살하는 만행을 참 많이도 저질렀다. 아직까지도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고 하거나 건국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극우들이 괴이한 일을 잘도 벌이는 것도 알고보면 모두 이러한 학살의 상처가 다 아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하루 어렵게 먹고 살아오는 가운데, 누군가는 죄악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한이 맺히고, 누군가는 덮어 버리며, 시간이 지나갔다. 하지만 염체는 사라지지 않고 모여 국가적인 망령이 만들어졌다. 그 망령들은 지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마음껏 선보여지기도 했다.

 

이런 유형의 망령들은 학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이승만 시절, 좌익을 마구잡이로 색출해내며마구잡이로 죽여나가던 과정에서,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한 행위를  '국가의 이름으로, 이념의 이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망령이란 것은 그런 기괴한 상황들에서야 만들어질 수 있다.

 

망령들의 종착지로 보였던 박근혜가 구속되고,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17년 4월 23일 현재까지도 '주적'이니 '송민순 회고록'이니 아직도 '색깔론'의 불을 지피려는 걸 보면 아연해진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색깔론'의 원조와 '반공 망령'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와 주제가 비슷한 영화로는 오멸 감독의 <지슬>이라는 영화와 조슈아 오펜하우머, 신혜수 공동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이란 영화를 추천한다. 둘 다 몹시 뛰어난 영화다.

 

* 아래 영상은 <그 섬에 가고 싶다>의 핵심 내용과는 상관이 없으며, '싸이키델릭'하기에 편집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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