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호 2017.03.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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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마강석에게 회를 사줬다.

창원 출신인 교교동창 마강석이는 일전에 설명했듯

마치 종교를 믿듯이 신한국에서 새누리까지를 신봉해왔기 때문에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분명히 큰 충격에 빠져있지 않을까 싶어

위로하는 차원이었다.

 

충격은 충격인 듯 했지만 마강석이는

예상외로 '특검 언론 민중 국회 헌재'가

좌경 세력에 물들어 설계를 한 합동 내란이라는

음모론을 믿고 있지 않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확실히 이번 사태로 20년만에 강석도 변하긴 변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무엇을 믿어야할지 모르겠어.”

 

강석은 혼돈스럽다는 듯이 방어회를 집어먹고는

소주를 쓰게 들이켰다. 나는 물었다.

 

“왜 뭘 믿을지 모르겠어?”

 

“그동안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부셔져 버렸어.”

“하지만 그렇다고 반대 편들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단 말이야.”

 

“그래니까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 같은 걸 못 믿겠다는 거지?”

 

강석은 다시 한 번 소주를 쓰게 들이켰다..

그는 원래 항상 소주를 반잔씩 꺽어 마시는데

연거푸 원샷을 하는 걸 보아 정말 심각한 것이다.

 

“민주당? 못 믿지. 그 뿐만이 아냐!”

“지구가 태양을 돌기는 하는 건지, 내가 우리 엄마 자식이 맡기는 한건지.”

“아니 그 전에 내가 지금 살아있기는 한건지 조차 못 믿겠어. 허무해.”

 

그에겐 그만큼 충격이었던 것이다.

새누리당의 붕괴와 박근혜의 탄핵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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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샤르트르처럼 왜 그래? 정신 좀 차리라구!”

 

그러자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 정말이야. 어디서 보면 이 세상은 다 환상이라고도 하잖아.”

“사실 세상에는 뚜렷하다고 할만한 진실이 애초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할 수 없이 가방에서 말랭코프를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말랭코프 특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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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나는 말랭코프 선생이다.”

 

나는 말랭코프에게 마강석이 현재 처해있는 혼돈과 실존의 고민에 대한 조언을 요구했다.

그러자 말랭코프 선생님이 대답했다. 말랭코프의 대답은 편의상 색깔을 바꿔 구분하기로 한다.

 

 

마강석씨가 세상에 뚜렷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 빠진 것,

이른바 상대주의에 빠진 것은 크게 놀랄만한 일이 아닙니다.

본래 각 사상이나 관념에는 그에 따른 의식수준이라는 것이 있는데

마강석씨의 경우, 늘 같은 수준 안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적인 극좌나 극우, 나아가 상대주의, 해체주의, 구조주의

회의주의, 허무주의, 음모론, 유물론 등은 주로 비슷한 의식수준에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이따금 대립되는 것 같아도 기회가 되면 서로 옮겨타기 쉽습니다.

 

때문에 극우의 선동과 오래된 반공 음모론에 속고 있었던 마강석씨가

이러한 상대주의에 빠진 것은 따지고보면 별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과거 소련을 보고 사회주의를 추구하던 극좌였던 신지호라는 사람이

소련을 붕괴를 보고 자유주의연대를 만들며 뉴라이트를 탄생시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비온전한 이념들은 겉모양만 다를 뿐, 내부의 속성이 대게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겹쳐지거나 옮겨탈 수 있지요.

 

이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절대적인 진실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누구에게는 진실이고 누구에게는 거짓인 것은 없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각자의 상태에 따라 진실이 각기 다르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진실의 지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아카식 레코드에 명명백백히 공정하게 기록되고 있으니

모든 사건의 진실 여부는 사람의 상태가 좋아지면 다 찾아서 볼 수 있습니다.

 

마강석씨는 현재 의식상태가 썩 좋지는 못하기 때문에

진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헤메는 것입니다.

이상 말랭코프 선생님.

 

 

말랭코프가 가방 속으로 쏙 들어가자

강석은 탁자를 주먹으로 세게 내리치며 분개해했다.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 저 새끼는 뭔데 항상 훈계질이야!!”

 

나는 강석을 진정시켰다.

 

“이봐. 그래도 어르신이신데 말을 좀 삼가서 하자!”

 

술을 한 잔씩 나누고 조금 진정이 된 강석이 말을 꺼냈다.

 

“그래. 사실 박근혜 탄핵 때문에, 존재니 뭐니까지 들먹인 건 오버였어.”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무엇이 진실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단 말이야.”

“태극기 집회 쪽이 진실인지, 촛불 집회 쪽이 진실인지 말이야!”

 

나는 말했다.

 

“딱 봐도, 행태를 보면 친박 집회 쪽이 정신 나간 것 같아 보이지 않아?”

 

그는 말했다.

 

“이쪽을 보면 이쪽 말이 맡는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맞는 것 같단 말이야.”

“예를 들어 태극기 집회도 몇백만명이 모이는데, 내가 볼땐 언론이 공정하지 않은 것도 맞아!”

“촛불집회에만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태극기 집회는 작게 보도하는 게 사실이잖아!”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한 번 말랭코프를 소환해야 했다.

하루에 두 번이나 말랭코프를 꺼내는 건 꽤 이례적인 일이다.

촛불 집회와 친박 집회에 대한 언론보도의 공정을 묻자 말랭코프가 대답했다.

 

 

우선 두 개의 집회는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강석씨 같은 유물론자들이 볼때는 많은 사람이 나와서

각자의 의견을 발설한다는 행위로 비슷해 보일 수도 있으나 

모든 것들의 내면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 집회의 차이를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말랭코프는 지팡이를 들어 허공을 절도있게 터치하며 본격적인 대답을 시작했다.

 

우선 집회의 참가자 숫자입니다.

2월 말이나 3.1절의 경우, 친박집회도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작년 10월부터 계속된 촛불집회처럼 지속적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뻥튀기가 너무 심합니다.

친박집회 총동원령을 내린 3.1절의 경우 100만명이 넘었을 수는 있으나 500만명이라는 건 억지입니다.

이렇게 한두 번 많이 동원해 놓고 최근엔 만명만 모여도 200만이니 500만이니 함부로 숫자를 갖다 붙이니 문제지요.

일시적 국면만을 보고 뻥튀기를 곱절로 해서 태극기가 촛불의 몇배를 넘었네, 어쩌네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두번째는 자발성의 문제입니다.

촛불 집회의 경우 시민이 자발성을 갖고 나온 집회입니다.

대학교 학생회나 단체 등에서 동원되기도 하던 과거의 집회 방식으로 모인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수가 참가했다는 것이 더욱 의미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박집회의 경우, 일부는 돈을 매개로 참가자를 모으기도 했으며

물론 전부다 돈을 주고 데려온 것은 아니고, 자발 참가자도 있겠지만

교회나 노인정 등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어르신들을 동원시켜서

이뤄낸 집회라는 사실은, 알려고 하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의식수준입니다.

친박집회는 기본적으로 음모론을 근거로 한 선동과 세뇌의 마당이기 때문에

의식수준이 낮고 에너지가 약합니다. 즉, 질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에 촛불집회는 국민들이 나라를 걱정해서 자발적으로 일어선 만큼

의식수준이 높고 에너지가 강합니다. 즉, 질이 좋은 것입니다.

 

때문에 언론이 질이 낮고 의식수준이 낮은 현상보다

질이 좋고 의식수준이 높은 현상에 집중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축구 매거진이 침대축구를 일삼는 아랍축구팀 보다 유럽이나 남미축구팀에

관심을 더 갖는 것과도 같은 이치지요.

 

오히려 일부 보수 언론과 관제 언론으로 전략한 국영방송들이

친박집회를 촛불집회와 동등한 수준의 집회인 양, 너무 뛰어준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 말랭코프 선생님.

 

 

마강석은 한 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느새 방어가 거의 떨어져가자 나는 매운탕을 주문했다.

펄펄 끓는 매운탕을 앞접시에 뜨려는 찰라 마강석이 물었다.

 

“말랭코프 선생말이야. 얼마면 살 수 있냐?”

 

나는 매운탕을 뜨던 국자를 매운탕 속으로 내팽겨쳤다.

 

“너 사과해!”

“말랭코프 선생님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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