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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오늘 저녁에는 왕돈까스를 먹을 수 있을지 몰라. 기대해도 좋아."

 

나는 SK브로드밴드에 전화 연결 하여 인터넷 해지 신청을 하였다. "곧 상담원이 연결됩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갈 줄이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조사해본 바로는 제 명의의 SK브로드밴드 인터넷의 약정기일이 2개 월전에 만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안녕하세요. 고객님."

 

"만약 제가 계약을 연장한다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네. 고객님. 이마트에서 사용 가능한 신세계 상품권 5만 원권과 함께 할인된 인터넷 요금 월 15,000원으로 이용 가능하십니다."

 

"그것참. 괜찮군요. 상품권은 당일 지급이 가능합니까?"

 

"고객님. 안타깝게도 상품권은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 고객님의 핸드폰 문자메시지로 교환권이 전송됩니다. 유의해주세요."

 

나는 초조했다. 그리고 두려웠다.

"오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오늘이 아니고서야. 그렇다면 계약을 취소하겠소."

 

"고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그럽시다."

미약한 흥분이 온몸으로 저릿하게 퍼져나갔다. 나는 왠지 조금은 살아있는 듯 하였다.

 

"고객님. 고객님의 소중한 시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알아본 결과 당일 상품권 지급이 가능하십니다."

 

갑자기 나의 머릿속에서는 장엄한 애국가가 흐르더니 민족해방의 섬광과 같은 희열이 들끓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적 가구, 전 지구적 가치와 미래------

 

나는 재빠르게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닷고기의 가시처럼 금이간 스마트폰 액정화면을 쳐다보았다. 마침내 문자메시지의 진동음이 울렸다.

 

 <신세계 모바일 상품권>

상품명 : 신세계 상품권

교환권 (50000원)

[인증번호 : 84246413]

교환처 : 전국 이마트 상품권 샾

(전국 신세계백화점 및 이마트 인천점,

이마트 광주점은 교환불가)

유효기간 : 1년

- 교환방법 -

이마트 매장 내 

상품권샵(안내데스크)에서 

고객본인이 인증번호와

신분증 확인 후

상품권과 교환 가능합니다.

(신세계 상품권으로 교환 후 반품 불가)

문의 : 1566-5415

 

나는 스마트폰을 붙잡은 채 무릎을 꿇고서 말했다.

"그래. 아직 이 세상에 희망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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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의 이마트는 한적했다.

나의 계획은 "삼 만원어치 장을 보고 나머지 이 만원은 현금으로 돌려받아야지."

 

일단 참기름부터 사야 했다. 참기름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 급할 때는 맛소금에 참기름을 첨가하여 밥을 비벼 먹으면 일단 안심이다. 그리고 스팸과 참치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도 사야지.

 

알뜰하게 장을 본 나는 성공적으로 이만 원을 거슬러 받고 이마트를 빠져나왔다.

 

"한동안은 걱정 없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해 반점에 들러 간짜장을 한그릇 하기로 했다. 애초 계획은 왕돈까스였으나 갈대와 같은 나의 마음은 이미 간짜장으로 돌아선 뒤였다. 상해 반점은 내가 애용하는 중식당이다. 적어도 한 달에 세 번은 방문하니 그들 입장에선 나는 VIP인 셈이다. 간짜장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멋적스레 주위를 둘러보니 평소 못 보던 아가씨가 홀 서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녀에게 눈치가 보여 불편했다. 간짜장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와 눈이 여러 차례 마주쳤다. 간짜장이 도착했지만 나는 그 아가씨가 영 불편해 그만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제길. 배고픈데. 제길. 왜 하필이면"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제 먹다 만 찬밥에 스팸을 구워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 간짜장이 아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부자리에 누워 한숨 돌릴 때쯤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아저씨 문 좀 열어봐요."

 

나는 살얼음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구요?"

 

"아저씨. 저 아랫집 사는 사람이요."

 

다행이다. 아랫집 네팔 여인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전기세와 수도세 나왔어요. 여기. 여기. 합해서 4만6천 원 주세요."

 

"지금은 돈이 없으니 16일 날 드려도 될까요? 그때가 월급날이라서요."

 

"네. 빨리 주세요. 근데 아저씨 방 안 추워요?"

 

"네. 춥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고 나는 마음이 이상하여 그만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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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성 2017.01.03 23:36

    상해반점은 정직한 업소로서 남이 시킨 간짜장을 다른 사람에게 갖다줄리 없다.
    고로 주인을 잃은 간짜장은 가엾게도 속절없이 불어터졌을 것이다.

    "조금상씨, 그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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