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제 7의 푸른 불꽃 <1화, 검은 말과 금빛 방패>

by 김동화 posted Mar 01, 2017

숲을 빠져나온 로이드는 언덕 위 성벽에 둘러쌓인 마을을 바라보았다. 스티그마 왕국령 알 트루아 마을. 로이드의 은색 체인 메일이 덜그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햇빛에 반짝거렸다. 로이드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며 투덜거렸다.

 

"사는 게 고생이지. 암. 사는 게 고생이야."

 

터벅터벅 진흙 구덩이를 비껴가며 길을 걷던 로이드 앞에 비로소 성문이 모습을 보였다. 입구 양쪽으로 창을 들고 서 있는 두 명의 병사가 건조하게 로이드를 쳐다보았다. 

 

"헤에. 죽지 않았군." 
"그러게 말야."

 

로이드는 그들을 무시한 채 땅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는 곧장 선술집 <검은 말과 금빛 방패>로 향했다.

 

왼쪽 눈알이 없는 병사가 경멸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떠돌이 자식."

 

허리가 약간 굽은 곰보쟁이가 말했다.
"보초 끝나고 한 잔 어때?"

 

눈알이 없는 병사가 쏘아 붙였다.
"그걸 말이라고?"

 

마을 안으로 들어선 로이드는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포고꾼을 마주쳤다.
"칠흑가면 레이디 에벨린. 성 루가의 붓을 훔치다!"
"성 루가의 붓을 훔친 칠흑가면 레이디 에벨린. 다음 목표는 기욤 드 러틀랜드 영주의 황금 유리병!?"

 

"이보게. 떠돌이 양반. 고블린은 해치웠나?" 마을 가죽수선공 노엘이 포고꾼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로이드를 발견하고선 말을 건냈다. 

 

"칠흑가면 에벨린?" 로이드는 질문의 대답 대신 롱소드의 칼자루를 건들며 물었다.

 

"자넨 떠돌이라 잘 모르겠군. 요 근래 알 트루아 근방에서 무척 유명해진 도둑일세." 노엘이 지저분한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도둑이라... 아 참. 자네 이 장갑 좀 봐주게나." 로이드는 가죽 가방에서 고블린의 피가 묻은 장갑을 꺼내 보였다.

"이프리야 산이군." 노엘은 피에 젖은 장갑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아쉬운 듯 말했다.

 

"햇빛에 노출된 고블린 피는 가죽을 상하게 하지. 아무리 이프리야 산이라지만 피가 너무 많이 묻었어. 보게나. 벌써 가죽이 흐물거리지 않나."

 

"제길! 비싸게 주고 산 건데." 

"나한테 넘기게나. 은화 두 잎으로 쳐줌세."

 

"두 잎? 자네 진심인가? 수도 <골든 필러>에서 은화 12잎이나 주고 산거라네!"

"흥. 그만두세. 난 아쉬울 거 없으니."

 

"아니. 이보게. 아무리 그래도 세 잎은 줘야 하지 않겠나."

"두 잎 이상은 안 되네."

"너무하는군." 

 

노엘은 은화 두 잎을 로이드에게 건네며 말했다.

"두 잎이면 잘 쳐준걸세. 그럼 가보게나."

 

로이드는 고블린을 저주하며 다시 선술집으로 향했다. 노엘은 로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웬 횡재람! 이프리야 산 가죽장갑을 두 잎에 얻다니. 햇빛에 쬔 고블린 피는 무슨! 저 바보 같은 놈!" 

 

엉성한 목제 건물 안쪽에서 시끌벅쩍한 소리가 창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건물 외벽은 볏짚을 섞은 회반죽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옻칠을 한 낡은 문 위에 매달려있는 나무 간판에 검은 말을 타고 금빛 방패를 든 기사가 그려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간판이 흔들려 기사가 실제로 말을 타고 달리는 것 같은 환상이 일었다.

 

"돌아왔군. 자네." 주인장으로 보이는 풍채 좋은 사내가 로이드를 알아보았다.

 

화롯가 오른쪽 구석에서 벌써부터 흥청망청 취해있는 주정뱅이 여럿이 젖가슴을 반쯤 내놓은 젊은 여급을 실없이 놀리고 있었다. 

 

로이드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는 나무 탁자 위에 가죽 가방과 롱소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슴구이하고 벌꿀술! 빨리빨리."

 

주인장은 젊은 여급에게 눈짓을 보내고는 로이드 앞에 다가섰다. 젊은 여급은 주정뱅이들을 밀치고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은 성급하게 물었다. 

 

"고블린들은 어찌 되었나?"

"엄지손가락만 남은 신세지."

 

로이드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 주인장 앞에 내밀었다. 주인장은 검은 털이 난 손가락 두 개를 확인했다. 그리고 안심하듯 말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주인장은 기뻐하며 은화 100잎이 담긴 갈색 천 주머니를 로이드 앞에 내밀었다.

 

"약속했던 은화 100잎 일세. 이제 걱정 없겠어. 한동안 그 빌어먹을 고블린 때문에 숲속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로이드는 천 주머니를 열어 꼼꼼히 은화를 세며 말했다.

"숲속에 대체 뭐가 있기에 그런가?"

"사업상 비밀일세. 아무튼, 자네 보기와는 다르군그래."

로이드는 마지막 은화까지 세어본 뒤 갈색 천 주머니를 가죽 가방에 넣었다.

 

마침 젊은 여급이 사슴 구이와 벌꿀 술을 가지고 돌아왔다.
"드디어 오셨군." 로이드는 허겁지겁 사슴 고기를 뜯었다. 달콤한 벌꿀 술도 흡족하게 마셨다.

 

주인장이 물었다. "그래. 언제까지 머물 생각인가?"

로이드는 뼈에 붙은 살코기를 뜯어내며 말했다.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았네."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볼 생각 없나? 시골 마을이라 자네 같은 모험가가 드물어. 고블린 말고도 골치 아픈 일들이 많다네. 돈도 넉넉하게 주겠어. 약속하지."

"돈이야 언제나 환영이지."

 

어느덧 밤이 깊었다. 화롯가 주위는 황금빛으로 물들고 주정뱅이들은 열심히 술을 마셔댔다. 로이드는 연거푸 벌꿀 술을 들이켜며 삶은 감자, 당근,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 기름으로 구운 토끼고기를 배부르게 먹었다.   

 

풍족하고 황홀한 시간이 지나갔다. 로이드는 나무계단을 올라 선술집 이 층으로 향했다. 작은 탁자와 간이화로. 볏짚으로 만든 침대가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로이드는 술기운과 하루의 피로로 체인 메일도 벗지 않은채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계속>

Comment '1'
  • 동시성 2017.03.02 02:25
    로이드는 고블린의 담낭을 챙겼어야지! 고블린의 담낭은 홧병에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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