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삐라의 추억

by 동시성 posted Dec 0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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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사람' 노태우 정권 시절, 성동구 사근동에 살던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나는 삐라를 종종 주웠는데, 모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음에도 그것은 왠지 '불온'한 것이므로 아까운 마음에도 국민학교 현관 1층에 있는 삐라 수거함에 넣어야만 했다. 당시엔 삐라를 10개 모으면 '학습용 자'를 준다거나, 다섯 개를 모으면 '지우개'를 준다거나 하는 '성과별 차등상품'이 지급 되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 메니악한 아이들은 전문적인 삐라 컬렉터가 되어 자신의 수집품을 마구 자랑하고 다녔던 것 같다. 사실 삐라는 딱지나 로보트 따위가 그려진 카드, 별이 박힌 구슬이나 따조 따위 보다 훨씬 레어한 수집품일 수 있었다. 일부 대담한 아이들은 삐라 수거함에 막대기를 끼워 넣거나 해서 삐라를 '도적질'하기도 하였다.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글자가 많은 삐라 보다야 아무래도 그림이나 만평 식의 1컷 만화 형식이 더 인기가 좋았다. 지금도 내가 기억하는 만평 형식의 삐라가 하나 있는데, 그 당시엔 별다른 생각 없이 봤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삐라는 흔히 알려졌듯, 북한이 남한으로 보낸 삐라가 아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삐라는 크게 네 종류가 있을 수 있겠는데, 북한이 남한으로 보내려고 만든 것, 남한이 북한으로 보내려고 만든 것, 남한의 좌익이 남한 국민을 대상으로 만든 것, 그리고 남한의 극우가 남한 국민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 되겠다.

 

내가 기억하는 만평 형식의 삐라는 저 중에 네 번째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북한이 남한 사회에 혼돈을 주려고 내용을 한 번 비틀어 만든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민정당'이나 '안기부'에서 만들었다고 봐야 합당할 만한 내용이다.

 

그 삐라에는 김일성 주석이 높은 단상에 앉아 "어서 남조선을 전복시켜 바쳐야지 뭐하냐"고 호통을 치고 있었고,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김일성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린 채 "형님! 죄송합니다"며 싹싹 빌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그러져 있었다.

 

 

<2>

 

삐라의 뜻은 '전단(傳單)의 잘못된 표현'인데, '선전이나 광고 보다는, 선동을 목적으로 한 전단'이다.

 

저마다 컴퓨터와 스마트 폰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IT 강국에서 구문물인 종이 쪼가리 형식의 삐라는 사실상 그 가치와 기능을 상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삐라가 사라졌는가?

 

지금의 시대는 '삐라 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삐라의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을 거치며 그야말로 삐라는 한 차원 '진일보'하였고 탁월한 '효과'를 입증하였다. 뉴데일리 등의 극우 언론과 일베 등의 반사회 단체는 이 '신개념 삐라'를 열심히 제작하였고, 국정원과 박근혜 캠프는 무차별 댓글과 포스팅을 통해 이 '신개념 삐라'를 널리 배포하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이 '시체팔이'를 한다는 반인륜적이고 폐륜적인 내용의 삐라 마저 널리 배포하였으니, 김대중이 김일성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내용의 옛 삐라는 차라리 순박해 보일 정도다.

 

삐라를 통해 선동과 세뇌를 하던 조잡하고 저속한 정권의 실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삐라 따위에 속지 말자. 더 이상 순진하게 거짓에 농락당하지 말자.

 

일제가 '창씨개명'을 촉구하는 삐라를 뿌리고, 서구의 침략으로부터 조선민중을 보호하려 한다는 세뇌와 각종 유언비어를 퍼뜨린지 100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같은 세력(일제, 친일, 수구, 싸이코패스 세력)에게 같은 방식으로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속아왔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세 번 이상 속았으니, 더 이상은 속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작금의 국면이 가라앉는다고 해서, 또다시 망각하고 이러한 조잡한 선동질에 놀아난다면, 어쩌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통상적으로 듣는 흔한 말이지만 자유는 정말로 공짜가 아닌듯 하다. 동학농민혁명, 독립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가들이 흘린 피를 더 이상은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진실을 봐야한다. 오늘 들었던 촛불을 마음속에서 다시는 내려놓지 말자.

 

 

<P.S>

 

곧 다가올 대선과 앞으로의 선거에서 더 이상 박근혜 같은 사람이 뽑히지 않도록 해야한다. 사람마다 의식수준의 차이는 있는 법이며, 세상에는 의외로 정의롭고 착한 사람들도 많다. 자기 자신이 부패하고 세상에 찌들고 돈의 노예가 되었다고 모든 사람(정치인 포함)들도 자기처럼 '그놈이 그놈'일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이런 '정치 회의주의'야 말로 수구 세력이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낸 대표적인 선동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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