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짐승의 형상을 이용한 로고 이미지들

by 막심 posted May 07, 2013

[ 독립국가연합(제 25회 바로셀로나 올림픽 우승국)에서 온 막심 구르지예프와 함께하는 디자인 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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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짐승 '미첼린'

 

이름이 '비벤덤(Bibendum)'이라고 알려진 다소 요란한 형상의 저 짐승이 정확히 무슨 짐승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얼뜻보면 얼굴이 한국의 만화 캐릭터 둘리랑도 비슷하여 처음엔 공룡으로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룡으로 삼기에는 아무래도 팔다리가 너무 사람 같고 무엇보다 꼬리가 없다는 점과 너무도 당당히 직립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 사람과 유사한 짐승으로 보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가장 유사한 짐승으로는 록키 산맥에서 이따금 발견되는 희귀종인 '빅풋(Bigfoot)'을 들 수 있을 것인데, 그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외계인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줄무늬를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그가 전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 그는 살아 움직이는 미라로구나!" 하고 놀라던차 1898년이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영국의 하버트 웰스라는 소설가는 1897년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이라는 독특한 소설을 하나 발표하였다. 그리고 저 짐승이 만들어진 건 그 '투명인간'이라는 소설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그 이듬해이다. 나는 그제서야 저 요상한 짐승이 사실은 짐승이라기 보다 비록 투명하여 붕대를 뒤집어쓰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미첼린'이라는 회사는 대체 뭘하는 회사이길래 투명한 (투명함에도 불구하고 피둥피둥하기까지한) 인간을 로고 이미지로 내세웠을까? 아마래도 공상 과학이나 의학을 연구하는 단체였거나 다이어트 약 정도를 판매하던 제약회사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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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짐승 '라코스트'
 
대략 2억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에서 쥐라기 초에 나타난 육식 짐승 '프로토수쿠스'의 모습이다. 어렸을적 과학 서적에서 화석 사진을 보고는 그 강렬한 모습에 두려워져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비수와 같이 날카로운 다수의 이빨을 가진 늪지의 무시무시한 포식자 프로토수쿠스! 하지만 저 그림에서만큼은 비교적 앙증맞고 귀엽게 그려져있어 어린이들의 친구 도룡뇽과도 일정부분 견줄만하다. 그럼에도 크게벌린 입과 이빨 만큼은 제대로 표현되어 강력해 보이기도 하는 면모 역시 가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경찰 캐릭터인 '포돌이'와도 비슷한데, 포돌이는 어린이들도 좋아할만한 마치 인형같은 모습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자세히 보면 머리가 지나치게 커다랗기 때문에 두려움 마저 들게하는 - 마치 일본의 '20세기 소년'이란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인 '탈을 뒤집어쓴 친구'와도 같은 - 공포스러운 모습 역시 지니고 있다. 이는 국민을 지키는 친절한 도우미인 동시에 범인을 체포하는 강력한 경찰로서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함일 것이다.
 
저 '라코스트'라는 이름의 프로토수쿠스 역시 마찬가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사람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친절하고 사려깊은 도우미인 동시에 적은 물어뜯어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사나운 눈매! 그리고 국방색 칼라! 저것은 분명히 어느 군대의 로고 이미지일 것이다. 이름이 '라코스트'인 것으로 보아 라코스트 장군이 이끄는 강력 특공대이거나 라코스트 사장이 이끄는 복합민간군사기업의 로고 이미지가 아닐까 예측된다. 1933년도에 창설된 것으로 보아 2차 대전에서 활약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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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짐승 '펭구인'
 
'펭쿠인'이라는 다소 기이한 이름과 생김새를 가진 저 짐승을 처음 볼때 아마도 '오리 너구리'나 '수달' 같은 동물로 추정하였는데 명확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펭구인'이라는 이름을 보고서 대만의 뉴웨이브 영화 감독 후 샤오시엔의 '펭쿠이에서 온 소년'이란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대만의 섬 '펭쿠이(Fengkui)'라는 지역의 천연 기념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림의 하단 문구를 보면 처음 디자인을 한 사람 이름이 '에드워드 영'이란 걸 알 수 있는데,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또 다른 기수로 '하나 그리고 둘'이라는 영화를 연출한 '에드워드 양'과 마침 이름도 비슷하니 더욱 그래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것이 호주섬의 캥거루와 겨룰만한 펭쿠이섬의 펭구인이란 짐승일 것이라 단정 지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 펭쿠이와 펭구인은 스펠링조차 많이 다르다.
 
원점으로 돌아가 다시 쳐다보니 저것이 꼭 실존 짐승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짐승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시 보니 선과 색상의 느낌이 꼭 '아프리카 문양'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여러가지로 이해가 간다. 저것은 펭구인이라는 부족의 전통 문양으로서 저기 거려진 것은 상상속의 짐승이거나 아예 짐승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추상적인 이미지인 것이다.
 
펭구인 부족은 1934년에 부족 문양을 공식 로고 디자인하고 1949년에 다시 현대적으로 리다자인한 것으로 보아 꽤 힘이 강한 부족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것도 서양 기술자들를 기용해 두차례나 로고화 했으니 재력도 있어 보이며 무엇보다 서구에도 열려있는 개방적인 부족인 듯 하다. 그러니 전통의 영역인 부족 문양을 현대 컴퓨터 기술을 차용해 그래픽화 시킬 생각까지 했을 것이다. 족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런 유연함이 근래까지도 저 부족을 건재하게 한 것이 아닐까?
 
이것은 순전히 감이지만 '드록신'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축구선수 '드록바'가 태어났고 '말라도마'라는 서구에도 제법 알려진 전통 비의(秘儀) 연구가를 배출시킨 '아이보리 코스트'에 있는 부족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지금 이 순간 펭구인 부족은 아프리카 서부 해안의 강렬한 노을빛을 받으며 구수한 냄새가 나는 기장떡을 삶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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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짐승 '플레이 보이'
 
한국전쟁이 휴전되던 해에 탄생한 어린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 짐승인 토끼를 귀엽게 표현한 저 그림을 보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임이 분명하다. 이름도 플레이 보이 즉, '노는 아이'다. 보이(Boy)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자칫 여자 아이들이 멀리할까 염려되었는지 목덜미 부분에 리본을 달아놓는 센스를 잊지 않았지만, 차라리 '플레이 차일드'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 귀여운 토끼 짐승을 로고 이미지로 내세우고 있는 이 회사는 미국 회사로 알려져 있는데, 어린이들의 놀이 완구나 교재, 어린이 전용 잡지 등을 제작하는 어린이들의 든든한 친구였을 것이다. 같은 미국 회사인 디즈니처럼 말이다. 1953년 미국, 어른들은 참전이다, 냉전이다, 매카시즘이다 정신없었지만 아이들은 그저 토끼 짐승이라면 더없이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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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짐승 '더블유더블유에프'
 
스포츠에서 엔터테이먼트로 격하되어 이제는 WWE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버린 미국의 프로 레슬링 단체의 초기 로고 이미지가 중국 너구리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왜 하필 너구리인가? 그것도 중국 너구리라고? 수시간 동안 먹고 수십시간 잠만 자는 중국 너구리는 나무늘보와 게으름뱅이 짐승 1~2위를 다툴 정도다. 재빠르게 뛰고 날고 던지고 때리고 물어 뚣어야 하는 프로 레슬링과 정반대의 이미지가 아닌가! 역설을 통한 강조인가? 당체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어슬렁 어슬렁 우람해 보이는 것은 체구가 큰 프로 레슬링 선수들과 겹치는 면이 없지만은 않다. 처음 시작하는 프로 레슬링이기에 부드럽게 보이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그런 의도라면 중국 너구리가 아니라 북극곰이어도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새롭게 창조한 스포츠 종목인 만큼 세계적인 전파를 위하여 사실상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인들에게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당시 공산주의 국가이던 중국에 미국의 상업 스포츠를 전파시키려면 이만큼의 뼈를 깎는 특단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큰 효과는 보지 못했던 걸로 안다.
 
하단 문구를 보니 결국 1986년도가 되서야 리다자인을 한 것 같은데 그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친숙하게 알고있는 낙서같이 거친투로 WWF라고 강렬하게 휘갈겨진 바로 그 로고일 것이다. 결국 25년씩이나 저 게을러터진 짐승을 고수하다가 정 반대의 느낌으로 바꾼 것인데, 마침 그즈음부터 프로 레슬링의 진정한 전성기가 찾아오기도 했으니 새로 바뀐 로고가 큰 몫을 했을거라 생각된다. 
 
아무리 봐도 저 로고 이미지는 거칠고 남성적인 프로 레슬링 단체는 커녕, 되려 정반대인 자연이나 동물 등을 보호하는 단체에 접합해보일 지경이다.
Comment '3'
  • 귀요미 2013.05.09 22:26
    미셀린은 기여워 기염기염해
  • 핫산 2013.05.10 22:15

    독립국가에서 왔다더니, 얼빠진 놈이로군!

  • 동시성 2013.05.11 23:26

    독립국가연합 회원국 중 하나인 아르메니아의 국민 2%는 조로아스터교 및 정령신을 믿는다고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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