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친구 굽타
체육 선생님은 체육복을 가져오지 않으면 작대기로 손바닥을 다섯대 때리고는 고맙게도 체육 시간을 열외(列外)시켜 주었다. 나는 체육복을 갖고 있었음에도 항상 남에게 빌려주고는 손바닥을 다섯대 맞고 50분의 자유시간을 얻었다. 내가 보기에 십분에 한대면 썩 괜찮은 거래였다.
아이들이 공놀이 따위에 한창 정신이 팔려있을 때쯤 몰래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남의 도시락통을 열어서 맛있는 반찬만 티가 나지 않도록 하나씩 꺼내 내 도시락통의 밥 안쪽에 은밀히 숨겼다. 자꾸 그러다보니 이제는 누구네 반찬이 맛있고 솜씨가 좋으며, 누구네 반찬이 형편 없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도 비밀스러운 반찬 사냥을 하고 있을때 였다.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다름아닌 굽타였다.
“그건 아마 내 반찬통인 것 같은데?”
순간 깜짝 놀라 반찬통을 떨어트렸다. 정어리 조림이 바닥에 몽땅 쏟아져버렸다. 하필이면 굽타 도시락을 열고 있을때 굽타가 나타나다니! 나는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굽타의 한쪽 어깨를 툭! 밀치면서 줄행랑을 쳤다.
화장실에 앉아 고민에 빠졌다. 굽타에게 커다란 치부를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굽타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시치미를 땔까? 쭉 피구를 하고 있었다고 우겨 볼까? 굽타가 환각을 본 것으로 착각하게 할 수는 없을까?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굽타는 손쉽게 자신이 환각을 봤다고 믿어버릴 만큼 멍청이가 아니다. 나는 굽타에게 솔직하게 시인하기로 했다. “나 김곰미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얌전한 엄친딸이만 식탐이 좀 있어! 그게 뭐 어때서?” 하고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다.
굽타는 교실에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몸이 안 좋아 체육 수업을 열외(列外) 받은 모양이다. 땅바닥에 쏟아진 정어리 조림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굽타는 날 돌아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아까는 미안했어.”
“뭐라고? 반찬을 쏟아버린 건 난데, 왜 니가 미안해?”
굽타는 거기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내 반찬통인 줄 착각했지 뭐야. 미안해. 실은 내가 색맹이거든!”
굽타가 색맹인 것은 맞다. 굽타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갓파들이 색맹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도시락과 남의 도시락을 구분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늘 정어리 조림을 싸오는 아이는 굽타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신사처럼 모른척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직 열세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속 깊은 굽타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굽타 너, 좋은 아이로구나!”
그렇게 나는 굽타와 친구가 되었다. 굽타는 내 첫 갓파 친구이다.
(2) 굽타와의 혼례는 가능할까?
나는 아직 열세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숙한 편이라 굽타와의 혼례를 꿈꾼다. 하지만 아버지는 갓파와는 절대로 사돈을 맺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강경한 반갓파주의자다. 갓파와 혼인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저주를 받아 요절한다는 게 아버지의 논리다. 아버지는 갓파가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물론 민방위 훈련을 받는 것도, 심지어는 직립보행(直立步行)하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갓파와 혼인한 사람들이 정말로 요절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들은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올라가거나 저수지로 숨어 들어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들 떳떳하지 못한 것처럼 도망쳐 버린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것이 싫은 것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당당하게 굽타와 혼인하고 싶다. 아름다운 도이칠란드의 성에서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혼례하고 싶다. 함께 세계를 누비고 싶다. 이런 내 간절한 마음을 굽타는 알리가 없다. 나는 '갓파해방연대'에 용돈의 상당량을 보낼 만큼 진지한데도 굽타는 내게 늘 무신경하다. 그런 굽타가 얄밉다.
(3) 굽타의 방식
반갓파주의자들은 갓파가 냄새가 난다고 경멸한다. 물론 갓파만의 냄새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의 주식이 어패류이기 때문이며 비난받을 만한 수준도 아니다. 인종차별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서양인들의 암내에 비하면 갓파의 냄새는 애교 수준이다.
또한 갓파는 지능이 높다. 이는 반갓파주의자들이 가장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부분이다. 21세기 초중반부터 갓파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만유(萬有)의 영장(靈長) 대접을 받게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반면 반갓파주의자들은 주로 지능이 낮은 열등생들로서 사실상 갓파를 질투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대표적인 반갓파주이자인 만화가 백종민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갓파는 똥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인간 여성이라도 한 번 쯤은 냄새가 지독한 설사를 지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갓파는 평생 설사를 지리는 일이 없으며 보기좋게 동그랗고 단단한 똥을 싸내며 놀랍게도 지독한 냄새가 없다. 되려 잘 맡아보면 찐고구마 비슷한 달콤한 냄새가 난다.
게다가 갓파똥에는 단백질과 칼슘, 레시틴 등 영양소 마저 풍부하고 맛 또한 훌륭하여 오늘날 영양학자들에게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리운다. 편견 때문에 많이들 먹지는 않지만 일부 유럽의 미식가들은 ‘Victor Panis!(승리의 빵)’라고 칭송하며 갓파똥이 없으면 포크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똥은 잘해봐야 거름으로 쓰이지만 갓파똥은 그 자체로 일용할 양식인 것이다. 이쯤 되면 갓파가 인간보다 못할 것이 뭔가!
나는 굽타에게 물었다.
“우리들 인간들은 얌채처럼 섭취한 음식물에서 필요한 영양소만 쏙 빼먹고 똥찌꺼기만 싸내는데 반해 너희들 갓파들은 어떻게 그런 양질의 똥을 싸낼 수 있니?”
굽타는 말했다.
“우리들 갓파는 우주에게 받은 것은 그대로 돌려주자는 주의야. 우주가 갓파들에게 양식을 베풀어 주었으니 갓파들도 갓파 나름의 변환장치를 거친 새로운 양식을 뽑아내어 우주에게 되돌려주는 거지!”
나는 갓파들의 나눔과 공존의 방식이 경이로왔다. 반면 먹고 함부로 싸재끼는 인간들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는 굽타에게 더 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찌꺼기를 어떻게 처리하니? 아무리 그래도 똥으로 배출하지 않으면 역시 몸에 찌꺼기나 노폐물이 축적되지 않나?”
그러자 굽타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갓파들이 배가 나오고 수명이 짧다고 비난하는데 그건 거짓된 음모론에 불과해. 갓파들이 배가 나오고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은 건 그저 종의 특성일 뿐이지. 우리 갓파들은 노폐물과 찌꺼기를 마음으로 처리해. 늘 바른 마음을 먹으며 노폐물과 찌꺼기를 정화하는 거지.”
“마음으로 처리한라고?”
나는 놀라 되물었다. 굽타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곰미 아가씨! 노폐물을 인간처럼 단순하게 물리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정화하는 거야. 이 아름다운 지구를 더럽히지 않도록 말이야! 그것이 우리 갓파들의 방식이고 나 굽타의 방식이야!”
그렇게 말하는 굽타는 해질녘의 노을빛을 받으며 붉게 물들어 보다 장엄해 보였다. 나 곰미는 굽타가 점점 좋아진다.
(4) 갓파 선언
갓파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만유(萬有)의 영장(靈長)에 등극하여 평등권을 쟁취한지는 어느덧 2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여러 차별과 냉대가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갓파들은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기 일수였다.
하지만 굽타만은 달랐다. 굽타는 따돌림은 커녕 되려 급우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총명하고 굳은 눈빛에서 발산되는 굽타만의 파워와 사람을 끌어들이는 부드러운 리더십은 초등학교 6학년의 것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런 굽타를 특히 부러워하던 통닭집 아들 만복이는 여름 방학을 앞두고 별안간 굽타 앞에서 갓파 선언을 했다. 만복은 두 주먹을 꼭 쥐고는 굽타에게 도전하듯이 말했다.
“굽타! 두고 봐! 나는 이번 여름 방학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갓파가 되겠다!”
굽타는 특유의 총명한 눈빛을 발산하며 말했다.
“만복이 넌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사랑스러운데, 왜 굳이 갓파가 되려고 하니?”
만복은 지지않고 말했다.
“아니! 난 갓파가 될거다! 굽타 너처럼 갓파가 되고 말거다!”
만복의 마음은 가량하지만 인간이 갓파가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갓파들은 지금의 갓파가 되기 위해서 영겁(永劫)의 시간을 족히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만복은 고작 한달 남짓한 여름 방학 사이에 갓파가 되겠다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런 만복을 비웃었다. 만복은 아이들의 조소를 뒤로하고 완벽하게 잠적했다. 여름방학 내내 만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만복이네 통닭집은 물론이요, PC방, 운동장, 오락실, 구멍가게 할 것 없이 이 동네 모든 곳에 만복의 흔적조차 없었다.
개학날 아이들은 만복에 대해 수근 거렸다. 만복이 갓파의 본거지인 일본의 시코쿠에서 바캉스를 즐겼다는 소리도 들렸고, 갓파가 되기 위해 용왕(龍王)님을 찾아가다가 그만 익사를 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런 가운데 만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만복은 만복이 아니었다. 갓파 그 자체였다. 쪽마른 몸에 배만 볼록했고 등도 적당히 굽어있었으며 피부도 한결 거무틱틱 했고 원형 탈모도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은 만복을 보며 놀라워했고 만복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굽타를 향해 말했다.
“굽타! 내가 뭐랬어? 갓파가 된다고 했지? 어때?”
굽타는 상심한 표정이었다. 굽타 옆에있던 나는 운좋게 굽타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다.
“겉모습만 갓파라고 다 갓파인게 아냐. 만복, 너를 어쩌면 좋으니."
신이난 만복은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자신을 뽐내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어떻게 갓파가 되었는지 묻자 만복이 말했다.
“공짜로 가르쳐 줄 순 없고, 20만원을 주면 열흘안에 갓파로 만들어줄게!"
<5> 칠득 실종사건
칠득이 삼일째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다. 소문에 의하면 갓파가 되기 위해서 만복에게 20만원을 주고 ‘갓파 캠프’에 자원했다는 것이다. 나는 만복에게 가서 물었다.
“칠득을 어떻게 한거지?”
그러자 만복은 당치도 안다는 듯이 말했다.
“칠득의 삶은 오직 칠득의 것이야! 왜 나한테 와서 그래!”
나는 계속 칠득이 걱정되어 굽타에게 말했다. 그러자 굽타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칠득이 걱정되서 방과후에 찾아보려는 생각이었어. 괜찮다면 곰미야, 너도 함께 가겠어?”
나는 굽타가 함께 가자는 말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말을 뱉었다.
“으응! 굽타와 함께 라면 지옥 끝이라도 함께 할거야!”
그러자 굽타는 아연실색하며 전에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심각하게 말했다.
“곰미, 어떤 일이 있어도 지옥에 가서는 안돼. 그 곳은 아주 무서운 곳이야!”
하마터면 나 곰미가 굽타를 좋아하는 마음을 들킬 뻔 했는데, 다행히도 지옥이 굽타의 주의를 끌어 주었다. 그런데 굽타는 어째서인지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방과후 굽타와 나는 먼저 칠득에 집을 찾아갔다. 칠득의 아버지는 일을 나가서 없고 집에는 칠득의 할머니만 계셨다. 할머니의 말은 내 예상을 적중했다.
“칠득이가 갓파가 되겠다고 편지를 써놓고는 장롱에서 돈을 흠쳐 달아났어! 애미 없이 불쌍하게 자라서 오냐오냐 해줬더니 도를 넘었어. 갓파 따위가 되겠다니! 칠득이 같은 놈!”
뒤늦게 할머니는 굽타를 인식하고는 사과를 했다.
“아이구! 여기 갓파가 있었네. 갓파라기엔 너무 반듯하게 생겨서 못 알아봤지 뭐야! 미안하구나.”
굽타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할머니의 사과를 받았다. 실제로 할머니는 칠득을 찾아보겠다는 우리에게 고맙다며 사과를 내어주기도 했다. 우리는 만복의 집을 찾았다. 정원이 딸린 이층짜리 고급 저택이었다. 굽타가 초인종을 눌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남의 집 담벼락을 넘기는 뭐해서 돌아가야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굽타가 소리를 질렀다.
“칠득아! 칠득이 거기 있니!”
그러자 벽 너머 어딘가에서 칠득의 간절한 외침이 들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굽타는 갓파답게 물갈퀴를 벽에 척척 붙이면서 쏜살같이 담벼락을 넘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밧줄을 던져주었다. 나는 밧줄을 타고 벽을 척척 넘었다. 나는 여자 아이 치고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다.
정원을 가로질러가니 칠득의 소리는 저택의 지하쪽에서 들려왔다. 지하실에는 마침 20인치 와이드 모니터만한 창문이 창살과 함께 하나 달려 있었는데 거기서 칠득의 소리가 집중적으로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 곧 구해줄게!”
굽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문의 창살을 흔들면서 나에게 지시를 했다.
“곰미, 가방에서 도라이바 좀 꺼내주지 않겠어?”
굽타는 가방에는 없는 게 없었다. 밧줄은 물론이요, 스위스제 정품 맥가이버 칼, 와인 오프너, 망치와 톱 등등. 심지어 드라이버도 전동 드라이버였다.
“사내들은 역시 공구를 좋아하는 구나!”
그러자 굽타는 지하실 창문의 창살을 전동 드라이버로 풀며 말했다.
“우리 갓파들은 개척정신이 뛰어나서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언가를 만들고 고칠 준비가 되어있어. 그것이 갓파의 방식이고 나 굽타의 방식이야!”
이윽고 창살은 떼어졌고 굽타와 나는 근처 나무 줄기에 묶은 밧줄을 타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깜깜했다. 우리가 타고 내려온 20인치 창문에서 내려오는 빛줄기 만이 이 밀폐된 지하실과 세계의 유일한 연결 통로였다. 지하실 저편 어두운 곳의 중심 부분에서 두려움에 떨고있는 칠득의 외침이 들려왔다.
“누, 누구세요? 하느님이면 절 구해주시고 귀신이면 썩 물렀거라!”
시야가 어둠에 익숙해지자 칠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칠득은 팬티만 입은채로 차디찬 지하실 바닥에 업드려 있었다. 칠득의 주위로는 대가리와 내장 등 생선의 부속물들이 널려 있었다.
“칠득아 놀라지마. 나 곰미야. 김곰미. 굽타랑 같이 구해주러 왔어.”
“굽타...? 곰미...?”
칠득은 울음을 터트렸다. 몇일 사이 눈에 뛰게 앙상해져있는 칠득은 머리에 비닐봉지를 덮어쓰고 있었다. 굽타가 다가가 비닐봉지를 벗겨보니 놀랍게도 머리 중앙이 벗겨져 원형탈모를 이루고 있었다. 갓파처럼 말이다.
“만복이 머리에 이상한 걸 발라서 타들어갈 것처럼 아파. 나를 묶어 놓고는 계속 날생선만 먹였어.”
굽타는 머리가 벗겨진 칠득의 정수리에 코를 처박고는 킁킁 냄새를 맡았다.
“탈색약이야! 탈색약을 과도하게 처발라서 탈모를 유도한거야!”
“무시무시해! 만복은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나는 만복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굽타는 칠득을 들쳐업고는 말했다.
“일단 여기를 빠져 나가자!”
칠득을 집에 데러다주자 칠득의 할머니는 엉엉 울었다.
“고맙구나, 굽타야. 갓파들은 우리네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도적때인 줄만 알았는데 너처럼 의로운 갓파도 있었구나.”
칠득도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굽타! 너는 나의 영웅이야!”
굽타는 물었다.
“칠득, 그런데 너는 왜 갓파가 되려고 한거지?”
“나는 인간이 싫었어! 가난한 우리 집도 싫고! 나는 굽타 너처럼 되고 싶었어!”
굽타는 말했다.
“2594년 전에 붓다께서 말씀하셨어. 인간 몸 받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라고. 그리고 190년 전에 수운께서 말씀하셨어. 인간은 마음 속에 천주를 모시고 있다고. 칠득! 자신이 인간인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도록 해. 그리고 갓파와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아.”
굽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문을 나섰다. 나 곰미도 따라 나왔다. 강둑에 다다를 때까지도 칠득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6> 만복의 회개(悔改)
다음날 학교에서 굽타와 나는 칠득과 함께 만복을 찾았다. 내가 먼저 말했다.
“칠득을 이꼴로 만들어 놓다니! 정학 당할 준비를 하는게 좋을거야!”
만복은 어제 칠득이 빠져나간 것을 보고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는지 여유로왔다.
“법적으로 문제될 건 하나도 없어. 자 보라구!”
만복은 우리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칠득은 갓파가 되기 위해서 만복이 시키는 모든 것을 이행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다해도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칠득에게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오칠득이란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칠득에게 물었다.
“칠득! 이거 정말 니가 싸인한 거니?”
“응. 내가 했어. 내가 무언가에 홀렸었나봐!”
만복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자 이제 볼 일 없지? 그러니까 다들 가봐!”
칠득은 만복의 바짓 가랑이를 잡고는 애원했다.
“저기 만복아! 20만원은 돌려주면 안될까? 부자인 너에게는 별게 아닐지 몰라도 가난한 우리집에는 소중한 돈이야!”
그러나 만복은 가차 없었다.
“만복 형님! 하고 부르며 내 구두를 핥아봐!”
“칠득 하지마!”
굽타가 칠득을 말렸다. 하지만 20만원을 되찾고 싶은 간절함 때문인지 칠득은 무릎을 끓었다.
“만복 형님! 만복 형님! 구두를 핥겠니다요!”
굽타는 눈을 감고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떨었다. 구두를 싹싹 핥은 칠득이 일어서 만복에게 두 손을 내밀자 만복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에게 그저 구두를 핥으라고 시켰을 뿐, 돈을 돌려준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했다. 그냥 구두가 드러워서 닦으려고 했을 뿐이야!”
“뭐, 뭐라고!”
칠득에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만복은 계속해서 지껄였다.
“내가 돈을 왜 돌려주니? 너에게 먹인 생선과 너에게 바른 탈색약은 공짜인줄 아니? 누군 땅 파사 장사하는 줄 알아? 이거 왜 이러셔!”
참을 수 없던 나는 만복의 아구창을 날리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굽타가 내 팔목을 저지했다.
“곰미. 무력은 안돼!”
그리고는 굽타는 비실거리며 웃고있는 만복에게 다가갔다. 만복은 비실거리며 웃었다.
“만복. 지금은 니가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비록 사회의 법은 너를 처벌하지 못해도 우주의 법은 언젠가 너를 처벌할테니까!”
굽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자 만복이 소리쳤다.
“우주의 법이 대체 뭐야! 그런게 어디 있다는 거야!”
굽타는 돌아서서 만복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너는 지금 한 줌의 쾌락을 위해 웃고 있지만 그 댓가는 훨씬 더 크다는 걸 모르겠니? 만복, 잊어버린거니? 태어나기 바로 이전에 너는 지옥에 있었잖아! 그 절규와 후회! 무시무시한 고통을 벌써 잊은거야?”
순간 만복은 무시무시한 지옥이 광경을 실제로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시뻘겋게 뜨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굽타는 발작하는 만복을 끌어안으며 진정시켰다.
“잘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용서해줘! 나는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아! 이제는 절대로 망각하지 않을거야!
“그래. 잘 생각했어. 어렵게 얻은 기회잖아. 이전의 방식대로 또 망쳐버려서는 안돼.”
만복을 회개(悔改)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굽타에게 물었다.
“뭘 어떻게 한거지? 만복이 지옥에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아니 그보다 실제로 지옥이 있기는 해?”
그러자 굽타는 말했다.
“너는 어려서 아직 자세한 걸 말하기는 이른데.”
“무슨 소리야! 굽타 너와 나는 동갑이잖아! 우린 같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구!”
굽타는 조금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오래전에 어떤 계기로 지옥을 견학한 적이 있어. 그때 만복은 제법 지옥의 하층부에 있었던 것 같아. 참, 너는 지옥이 실제로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지? 좀 더 궁금하다면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읽어봐. 놀랍도록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거든. 혹시 지옥이라는 표현에 부담스럽다면 교정센터 정도로 해두자. "
나와 동갑이지만 저런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굽타가 나는 무서우면서도 몹시도 사랑스러웠다.
갓파의 쓸개가 지랄병에 따봉이라는 소문이 있더군요.